살곶이 다리 전설에 대해 알아봅시다

살곶이 다리 전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402년 12월 무렵 살곶이 다리 인근에 있던 조선 3대 왕 태종에게 화살이 날라옵니다.화살을 쏜 사람은 다름 아닌 태종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였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수도 밖 타지에 갔다가 다시 수도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태종이 마중을 나갔는데요. 마중을 나가며 성대하게 맞이하려고 장막을 설치했습니다. 그 장막 중에서 태종이 자리 잡고 있던 기둥에 태조 이성계의 화살이 박힌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살곶이 다리 모습입니다.

태종은 아버지 이성계를 맞이할 때 장막을 설치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요. 태종의 부하 하륜이 느낌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연려실기술 “하륜 등이 아뢰기를, ”상왕(이성계)의 노여움이 아직 다 풀어지지 않았으니, 모든 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일(遮日)에 받치는 높은 기둥은 의당 큰 나무를 써야 할 것입니다.” 하니, 태종이 허락하여 열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로 기둥을 만들었다.”

 

 

그 후에 이성계와 태종이 멀리서 만나는데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연려실기술 “태조가 바라보고 노한 얼굴빛으로 가졌던 동궁(彤弓)과 백우전(白羽箭)을 힘껏 당겨서 쏘았다. 태종이 급해서 차일 기둥에 의지하여 몸을 가렸으므로 화살이 그 기둥에 맞았다.”

 

위의 이야기가 기록된 책은 ‘연려실기술’이라는 역사서인데요.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지은 사서(史書) 400여 가지의 야사에서 자료를 수집, 분류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즉, 위의 이성계가 태종에게 화살을 쏘았다는 전설은 실록 같은 책에 있는 정사(공인된 전통 역사)가 아니라 야사(역사 관련 뒷이야기)입니다.

 

위의 이성계와 태종 관련 내용은 사관이 기록한 실록 같은 정사 책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같은 시기에 이성계가 서울로 돌아왔다는 기록은 실록에도 있습니다. 태종실록, 태종 2년 12월 8일 “태상왕이 서울로 돌아왔다.” 이때 서울은 한양이 아니라 개경이었습니다.

 

태종이 이성계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의 황해도 금교역(金郊驛)(금천 지역)에 나가서 맞이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이성계가 태종에게 화살을 날린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서울시 성동구 행당1동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발생한 일은 아니고, 황해도 금천 지역에서 발생했을 일입니다.

 

살곶이 다리에서 살곶이 라는 이름 뜻은 ‘화살이 꽂힌 곳’이란 의미입니다. 위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지명이 ‘살곶이 들’ 이었습니다.

 

 

살곶이 라는 지명은 원래 있었고요. 이성계는 명궁이었습니다. 또 이성계와 태종의 부자지간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살곶이 다리 전설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살곶이 다리 전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사실이 곧 역사적 사실입니다.

 

태종과 이성계가 사이가 안 좋아진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종은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하여 이성계의 충신이었던 정도전, 남은, 심효생을 죽였습니다. 또 이성계의 친구였던 정몽주도 태종이 죽였습니다. 이제 라는 이성계 사위도 태종이 죽였습니다. 이방번, 이방석이라는 이성계의 아들(태종 이복동생)도 태종이 죽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성계는 태종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북 면의 유력자였던 조사의의 난도 배후에 이성계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태종이 왕일 때 일어난 조선 최초의 난이 조사의의 난입니다. 이성계가 조사의가 있는 동북 면에 간 후 며칠 있다가 난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태종상왕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세종 시대 기록) 조사의의 난 관련자들을 핵심인물만 죽이고 웬만해서는 너그럽게 처벌을 하였습니다.

 

위의 조사의의 난 배후자가 이성계라 살곶이 다리에 갔을 때 태종이 마중을 나가 보여 이성계가 활을 태종에게 쏜 것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상 살곶이 다리 전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권력 싸움은 부자지간이라도 서로 죽이려는 원수가 될 수 있는데요. 그런 것을 좀 유화시키는 민주주의 제도가 왕권 국가보다 이면만 보더라도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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