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1세 기독교를 선택하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선택하는

과정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로마라는 대제국의 황제

인데요.

스스로 신으로 여기지 않고 어쩌다

기독교를 선택하고 또 세례까지 받는

황제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자리가

되겠습니다.

 


서기 33년 예루살렘인데요.

한 남자의 죽음이 전 인류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나사렛 예수그의 죽음과 부활이

종교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4년 후,

저분은 사도 바울이십니다.

바울은 원래 기독교를 박해하던 유대교도였는데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개종을 한 후

기독교를 복음 하는데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그리스도를 따른는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구세주란 것을 전파했는데요.

유대교들의 눈에는 이단자고

로마인들 눈에는 대중선동가였습니다.

위험인물이죠. 잡히면 처형될 상황입니다.

바울은 20년 동안 로마제국을 여행하며 신자들을 만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노예를 학대하면

내세에 주인은 벌을 받고 주님을 믿는 노예는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기독교인들에게 쓴 편지들이

현재 신약성서의 절반가량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 로마제국이 건설한 길은 40Km,

지구를 10바퀴돌수 있는 길이 인데요

저 길들을 따라 바울의 메시지도 전파되었습니다.

사상의 힘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저 바울이 전파한 사상들이 세계 최강국

로마를 뒤덮게 됩니다.

 


그로부터 150년 후 로마의 한 항구도시인데요.

당시 기독교를 믿는 것은 불법이라서 걸리면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렇게 비밀리에 모임을 하게 됩니다.

초기 기독교 운동의 주역은 극빈곤층과, 노예,

여자들이었습니다.

로마에서 발언권이 없던 계층들이 기독교운동을

통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믿다 발각되게 되면 감옥에 끌려간 다음

처형당하게 됩니다.

맹수같은것의 먹이가 되거나 참수 등을 당하는데요.

그냥 기독교에서 개종을 하여 로마황제가 신이라고

인정하면 풀어준다고 얘기해도 죽음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입장에서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순교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최후의 시험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처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독교인들은 계속 늘었습니다.

신도 수는 100년 만에 20만 명에서 600만 명으로 늘어

났습니다.

로마인들 10명중 1명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너무 많이 퍼져 금지법이 해제되었습니다.

 


서기 337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까지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아래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말입니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나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기를

오랫동안 간절히 소망하고, 또 기도해 왔다.“

기독교는 로마로부터 몇 백 년 동안 박해를

받아왔는데요.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세례를 받은 후

로마제국 전체가 기독교로 돌아서게

됩니다.

로마와 교류하려면 기독교인이 돼야 했습니다.

 


그 후 이스탄불이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고

성소피아 성당이 세워지게 됩니다.

신성한 지혜의 교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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