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의 난 에 대해 알아봅시다

임꺽정의 난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임꺽정은 조선의 3대 도적 중 한 분입니다. 조선의 3대 도둑은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입니다. 홍길동이 연산군 때 실존 인물이었다네요. 임꺽정의 이름은 임거질정입니다. 저기서 질은 발음부호로써의 역할인데요. 그래서 실제 발음은 임것정이었다고 합니다. 임꺽정의 직업은 도적이고요. 신분은 양주 출신 백정입니다. 활동 지역은 황해도, 함경도, 강원도, 경기도, 한성부입니다. 특징은 변신의 귀재라고 합니다.

 

 

임꺽정 활동을 임꺽정의 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조선 왕실이 임꺽정을 단순히 도둑으로 보지 않고, 적국(敵國)으로 보았습니다. 국가에 대항하는 자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임꺽정을 잡기 위해 군대가 계속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임꺽정은 조선 시대 백정 출신입니다. 조선 백정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땅에 살게 된 오랑캐 종족을 뜻하는데요. 조선 시대 백정은 고려 시대 천민인 화척, 양수척의 후예라고 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일반 백성을 백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부르다 조선이 되고 나서 일반 국민을 백성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조선 시대 백정들이 고려 시대부터 조선인들에게 천대를 받아서 세종대왕이 조선 시대 백정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백정이라고 부르게 하였는데요. 조선 시대 백정은 그렇게 불리자 처우가 개선된 게 아니라 백정이라는 단어의 가치가 하락하는 결과를 맞이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백정은 도축업 이외에도 다른 많은 일을 했는데요. 가죽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것이나, 사형 집행 수, 버드나무 가지로 공예품 제작하는 것, 사냥 등을 했습니다. 임꺽정은 저 중에서도 버드나무 가지고 공예품을 만드는 고리백정이었습니다.

 

임꺽정은 고리백정이었는데요. 공예품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것이 갈대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왕실이나 권력자들이 갈대가 그렇게 많이 활용되는 것을 알고 자기 소유로 만듭니다. 그래서 임꺽정 같은 사람들은 졸지에 갈대를 돈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예시는 한 예시이고요. 조선 권력자들은 자기 힘을 이용하여 일반 백성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탈하였습니다. 그래서 임꺽정 같은 일반 백성들이 못살겠어서 많이 도둑이 되거나, 마을에서 도망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아래는 관련 기록입니다. 명종실록, 명종 15년 12월

“순경사를 지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굶주린 백성들이니 차라리 도적을 만나지 순경사(관군)를 만나지 않겠다는 원망의 말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명종 14년 3월 27일, 명종실록 25권

“사신은 논한다. 도적이 불처럼 일어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재상들이 탐오가 풍습을 이루어 끝을 모르므로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 권세가를 섬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백성들은 곤궁해져도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을 바라고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권력자들이 불법까지 저지르며 사리사욕 채우는 데만 몰두하여 백성들이 못살겠어서 도적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임꺽정의 난 임꺽정도 이런 이유로 도적이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꺽정의 난 임꺽정은 의적으로 많이들 아시는데요. 의적이라면 권력자들한테 재물을 빼앗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행동 등을 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실록에는 그런 유의 내용은 없습니다.

 

 

아래는 기재잡기에 실린 내용입니다. 기재잡기는 야사인데 참고로 적겠습니다.

“강포한 도적 임꺽정은 양주 백정으로서 성격이 교활한 데다가 날쌔고 용맹스러웠다. 그 도당 몇 명도 모두 지극히 날래고 민첩했는데 그들과 함께 일어나 적단이 되어 민가를 불사르고 마소를 닥치는 대로 약탈하되 만약 항거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을 발라내고 사지를 찢어 죽여 잔인하기가 그지 없었다.”

 

아래는 명종실록, 명종 14년 3월입니다.

“사람들은 보복이 두려워 감히 고발하지 못하고”

 

명종실록, 명종 15년 10월

“황해도가 온통 도적의 소굴이 되어 대낮에 사람을 죽이므로 길이 막혔습니다.”

 

임꺽정의 난 임꺽정은 의적이 아니라 그냥 도적이었습니다. 의적이라는 이미지는 홍명희 작가가 만든 것입니다. 임꺽정이 그냥 도적이긴 한데 국가에 위협이 될 정도의 큰 도적이었습니다.

 

임꺽정이 실록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명해진 사건은 이억근이라는 포도관을 죽인 사건으로 인해서입니다. 포도관은 도적을 잡는 관리인데요. 이억근은 포도관중에서도 전에 도둑을 많이 잡아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런 이억근이 임꺽정을 잡으러 갔다가 되레 당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이 사건으로 임꺽정은 조정에도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집니다.

 

이후에도 조선 조정은 관군을 많이 동원해 임꺽정을 잡으려고 계속하는데요. 오히려 관군들이 계속 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임꺽정은 산 지리를 잘 아는 등의 이유로 게릴라 전술 같은 것을 잘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꺽정의 난 임꺽정은 명종 14년에 실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요. 3년 후인 명종 17년에 황해도 토포사 남치근이 결국 임꺽정을 체포했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14일 후에 이미 처단했다고 보고합니다.

 

저 부분이 좀 명확하지 않습니다. 저런 대 도적을 잡았으면 자랑 좀 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조용히 갑자기 처단했다는 기록입니다. 실록에는 저 기록 이외의 관련 기록은 없습니다.

 

조선은 정도전이 설계한 나라입니다. 정도전은 성리학 이론에 입각하여 백성들을 위한 나라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후에 조선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수탈해가며 사리사욕 채우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는데요. 그 결정적인 계기는 연산군의 폭정입니다. 연산군 때 통치 질서가 흐트러져 조선의 수뇌부가 타락의 맛을 들여 그것이 명종 때까지 가서 결국 백성들이 못 살겠었어 임꺽정 같은 도적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

 

이상 임꺽정의 난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박근혜 탄핵에 실패했다면 통치 질서가 많이 흐트러졌을 것입니다. 탄핵을 위해 긴 겨울 동안 노력해주신 국민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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