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업적 어떤 것이 있을까요

흥선대원군 업적 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고종은 1863년 왕이 됩니다. 흥선대원군은 바로 고종의 아버지입니다. 대원군이란 용어는 선왕의 자손이 없어 방계로 왕위를 이을 때 즉위한 임금의 생부(生父)에게 주던 존호입니다. 조선 역사에서 대원군은 4번 있었는데요. 덕흥대원군(선조 父), 정원 대원군(인조 父), 전계 대원군(철종 父), 흥선대원군(고종 父)입니다. 저 중에서 1~3번째까지의 대원군은 아들이 왕이 되었을 때는 이미 죽은 상태였는데요. 흥선대원군 혼자 살아있는 상태에서 왕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위의 가계도가 흥선대원군과 고종 가계도인데요. 24대 왕 헌종과 25대 왕 철종은 아들이 없어 약 7촌이나(실질적으론 17촌) 먼 친척인 고종이 왕이 된 것입니다. 고종은 신정왕후의 양자로 들어가 왕위를 잇습니다. 신정왕후가 고종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고종이 어려 수렴청정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수렴청정하면 신정왕후가 권력을 잡을 수 있어 어린 고종이 왕이 된 것입니다.

 

 

야사에 보면 흥선대원군은 파락호라는 말이 있는데요. 파락호는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 허랑방탕하여 집안의 재산을 축내는 사람을 뜻합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운현궁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락호라는 말은 고종이 왕 된 것에 대해 드라마틱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상상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높은 사람을 부를 때는 아래와 같이 부릅니다.

폐하(황제) > 전하(국왕) > 저하(세자) > 합하 > 각하(대통령)

 

저기서 흥선대원군은 합하로 불리었습니다. 현재의 대통령보다 더 높은 존칭을 받은 것입니다.

 

 

흥선대원군 업적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경복궁 중건

2. 비변사 의정부 통합

3. 만동묘 제사 폐지

4. 서원 철폐

5. 양반에게도 군포(세금)를 거두었습니다.

 

 

조선 초기 경복궁은 약 775칸이었는데요. 흥선대원군 때 복원한 경복궁은 9,000여 칸입니다. 매우 크게 복원하여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변사라는 것은 원래 군사와 관련된 중요 업무를 의논해 결정하던 회의기구였는데요. 이게 세도 가문들에 의해 권력 기구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도정치를 뿌리 뽑고자 흥선대원군이 조처한 것입니다. 의정부는 조선의 최고 행정기관으로 삼정승의 합의로 국가 사무를 총괄하던 곳입니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 황제 신종과 마지막 황제 의종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사당입니다. 이것은 명 황제에 대한 제사를 왕실 주도로 할 것이냐 사림 중심으로 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서원을 대폭 정리하였습니다. 서원은 선조들에게 제사 지내고 같이 공부하고 그런 곳인데요. 이곳이 조선 중기 이후부터 붕당의 세력기반으로 변질하였습니다. 나쁜 말로 하면 자기 라인을 만드는 곳으로 된 것인데요. 그래서 흥선대원군이 붕당정치를 해소하기 위해 서원을 철폐한 것입니다.

 

이상 흥선대원군 업적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고종이 어렸을 때는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도와주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고종이 20살이 넘었을 때도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놓지 못하고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고종을 폐위하려 하는 등 자기가 왕처럼 행동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고종과 흥선대원군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는데요. 흥선대원군 업적도 좋지만 내려놔야 할 때 내려놓을 줄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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