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아봅시다

재외동포 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한국인들은 같은 민족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외국에 갔던 사람을 멸시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힘이 없어 병자호란 후에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환향녀들도 멸시하고, 고려인들도 나라 밖 사람이라 같은 민족으로 잘 보지 않습니다. 조선족들은 범죄를 자주 저지른다고 역시 멸시하지요. 범죄는 국내인도 저지르는 사항입니다. 이런 안 좋은 사고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는 일본 식민지하의 민족이 밤이던 시절 재외동포들이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어떻게 노력했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재외동포 의 독립운동 1. 철혈광복단

철혈광복단은 북간도 지역의 무장독립단체입니다. 15만 원 탈취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보면 정우성이 달리는 기차에서 보물 지도를 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에 바로 철혈광복단의 15만 원 탈취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영화입니다. 15만 원은 현재 돈으로 150억 원 정도의 가치입니다. 저렇게 일본의 돈을 뺏어서 그것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이용했습니다. 위에 보이시는 6분이 이 사건에서 일본의 돈을 뺏으신 분들입니다.

 

 

1860년대 초 조선인들은 몰래 압록강 두만강 국경을 넘어서 인삼이나 약초를 캐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187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만주지역으로 한인들이 이주해서 살았습니다. 처음엔 혼자 가서 살아봤는데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점차 가족이나 집안 단위로 이주를 대규모로 해서 살았습니다.

 

기존에 먹고 살기 위해 이주하였지만,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지역으로 이주를 해 가서 사셨습니다. 일본의 무단통치 기간인 1910년~1919년에 이주한 국민이 227,970명입니다. 1936년경에는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이 80만여 명입니다. 해방되기 직전에는 만주지역에 200만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한민족 조상님들이 사셨습니다. 당시 조선 인구가 1,500만 ~ 2,000만 명이었는데요. 매우 많은 인원이 만주에서 사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대부분 밭농사를 지었는데요. 조선인들은 논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습지나, 물 많은 곳을 좋아한다고 해서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을 매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만주에 처음으로 논을 만든 게 한인이고요. 러시아 지역은 고기를 주로 먹는데요. 그런 러시아인들에게 비타민이 풍부한 야채의 새로운 품종들을 보급해준 것도 한인들입니다.

 

 

위의 사진은 명동학교 출신 인재인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님입니다.

이렇게 한인들은 먹고 사는 데에만 얽매이지 않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학교를 지어서 계몽운동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명동촌 사람들인데요. 1908년 명동 학교를 설립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역사, 지리, 수학, 법학, 교육학, 농림학, 광물학, 외교, 통역, 작문, 체조, 창가 등이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운동을 할 인재를 키웠고, 실제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습니다. 당시 체조는 군사기술을 익히기 위한 체조였습니다.

 

 

재외동포 의 독립운동 2. 미국 멕시코 등에서 농장에서 독립자금을 보내셨습니다

1902년에 공식적인 첫 이민을 합니다. 하와이에 사탕수수농장에 일하러 이민을 가신 것입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사람을 채찍으로 때리지 않았습니다. 동물이나 채찍으로 때렸는데요. 하와이나 멕시코의 사탕수수농장 혹은 선인장 농장에서 채찍으로 맞으시며 고된 노동일을 조상님들이 하셨습니다.

 

플랜테이션이라고 해서 선진국의 기술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원주민과 이주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대규모 농업이 당시 시작될 때라서 한국 조상님들은 값싼 노동력 제공을 위해 미국이나 멕시코에 갔던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당시 하와이 이주민의 생활 시간표입니다. 40℃의 고온에서 채찍에 맞으시며 저렇게 고되게 일을 하셨습니다. 월급은 17달러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농장에서 채찍으로 맞으시며 고되게 일을 하시고 임금을 조금 받으셨는데요. 그중 몇 퍼센트는 꼬박꼬박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등 대한민국 독립에 노력하셨습니다. 월급이 17달러 수준인데요. 독립운동자금으로 연간 5달러~10달러 정도를 계속 후원하셨습니다. 기본으로 떼는 게 그렇고요. 추가적으로는 더 하셨습니다.

 

한일병합시기는 디아스포라 시기인데요. 디아스포라는 자의 혹은 타의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살아가는 민족 집단을 뜻합니다.

 

재외동포 의 독립운동 2. 동의단지회

연해주 연추에서 만든 독립운동단체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약지를 절단하고 혈서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게 안중근 의사 혼자 한 게 아니라 12명이 같이 한 것입니다. 연해주 연추에 단지 동맹 기념비가 있습니다. 거기에 12명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요. 일본에 검거될 것을 우려해 본명은 아니고 가명으로 안중근 의사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12명의 본명은 현재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재외동포들은 해외에서 어렵게 사시면서 계몽운동이나 독립운동 자금 지원으로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셨고요. 독립운동가들은 실제로 일본의 영향력이 적은 만주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셨습니다.

 

3.1운동 때는 영향을 받아 해외에서도 3.1운동을 같이 하기도 했습니다.

 

이상 재외동포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인구절벽 시대라 내수시장이 아주 작아질 것입니다. 이런 효과를 어느 정도는 피하고자 고려인이나 조선족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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