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에 대해 알아봅시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말 그대로 과거에는 교도소였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1920년 감옥 안에서 만세운동을 펼친 곳으로 유명합니다. 과거에는 일제에 의해 독립운동가분들이 많이 수감되었고요. 현대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던 민주주의 운동가분들을 많이 수감했었습니다. 이런 서대문형무소를 역사관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1908년 서대문형무소가 처음 개소할 때의 모습입니다. 면적이 약 13,000m²(3,934평) 이었습니다. 수용인원은 500입니다. 그 후 1935년에 증축을 하는데요. 그래서 면적이 약 54,500m²(16,500평)가 됩니다. 수용인원은 2,500명이 됩니다. 증축된 사진은 아래와 같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잡범들도 있었지만, 독립운동가분이 많으셨습니다. 교도소를 증축해야 할 정도로 당시 독립운동을 뜨겁게 많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분들을 살펴보면 1910년대에는 주로 의병 출신들이 많았고요. 1920년대에는 3.1운동 관련자분들이 많으셨습니다. 1930년대에는 해외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하던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한민족이 독립운동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3월 기준으로 서대문형무소의 수감자 일과표입니다. 여름같이 낮이 길면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7~8월에는 12시간 가까이 일을 했습니다. 오전 7시부터 노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점심시간은 30분이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하던 일은 양재봉공이라고 해서 실 짜기, 옷감 만들기, 군복 만들기 등의 의류와 관련된 작업을 했습니다. 형무소에 만든 제품들을 군대나 관공서에 보급했습니다.

 

잠자는 시간같이 휴식을 취할 때도 좁은 방에 너무 많은 사람을 집어넣어 제대로 눕지를 못했습니다. 사람만 있던 것이 아니라 변기통도 같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잠자는 시간은 똥통과 함께 뒹구는 시간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냉난방 시설이 없었는데요. 그래도 수감자는 겨울이 더 나았다고 합니다. 여름은 너무 더워서 옆의 사람을 증오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형무소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감방까지는 옷을 벗고 이동했습니다. 여성분들도요. 공장 안에서의 도구들을 감방에 유입시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중간에 허들 같은 장애물도 있었는데요. 항문 등에 중요 물품을 못 집어넣고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옷을 벗고 이동해야 해서 모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재현한 모습인데요. 저런 식으로 사람을 좁은 곳에 놓아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변기도 저런 좁은 곳에 같이 있던 것입니다.

 

큰방은 면적이 10.9m²(약 3.3평)인데 최소 평균 10명 이상 들어가 있었고요. 작은방은 3.9m²(약 1.2평)인데 최소 평균 3명 이상 들어가 있었습니다.

 

 

1919년 3.1운동 같이 대규모로 사람들이 형무소에 수감될 때는 1평당 5명 정도가 수감되었습니다. 여성들은 더 심했는데요. 여성들 감방이 더 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보다 더 작은 면적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형무소에서 밥 주는 양이었는데요. 독립운동가분들을 잡범보다 밥을 더 적게 주었습니다. 밥은 콩 40%, 조 같은 잡곡 40~50%, 쌀 10%였습니다. 성인 남성 1일 권장 칼로리가 2,700㎉인데요. 형무소에 있는 내내 배고프셨습니다.

 

 

수감자들이 너무 배고프니까 동물성 접착제인 아교도 작업장에서 몰래 먹었다고 합니다.

 

교도소에서의 고통은 냉난방 시설이 없는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는 것 + 배고픔 + 고문입니다.

 

 

위의 그림은 독립운동가분들이 노크로 방과 방간 메시지를 전달하던 방식인데요. 모스부호 같은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노크하는 것은 자음, 주먹으로 무겁게 노크하는 것은 모음입니다. 저 신호를 사용하여 1920년 3월 1일에도 유관순 열사가 감옥 안에서 만세운동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렸습니다.

 

통방이라고 하는데요. 국내에 계셨던 분들은 감옥 밖에서 저 방식을 미리 숙지하시고 나중에 감옥에 들어가셔서 이용하셨습니다.

 

 

위의 그림은 일제 강점기 때 감옥의 분포를 보여주는 그림인데요. 전국이 교도소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포정치를 한 것입니다.

 

광복이 되고 1945년 8월 16일 여운형이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광복되었다는 것을 수감자들에게 알립니다. 그래서 수감자들도 다 풀려나는데요. 그 수감자들이 전국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 루트를 따라 광복 소식이 전국에 전해졌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1945년 서울형무소로 운영되었고요.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였습니다.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바뀌고요. 이것이 1987년 11월까지 그대로 운영하다가 후에 1/3 정도만 남긴 상태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리모델링하여 현재까지 운영 중입니다.

 

2018년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방문자 수가 약 70만 명 정도입니다. 외국인 중에서는 일본인들이 제일 많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일본의 정치가 문제인 것이지 선량한 일본인도 많습니다. 울면서 둘러본다고 합니다.

 

이상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저도 기회 되면 한번 둘러보고 싶습니다. 1박 2일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고 하니 생각 있으신 분들은 사이트 방문하시면 될듯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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