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일어난 이유 에 대해 알아봅시다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김일성이 남한을 정복하기 위해서 일으킨 것입니다. 김일성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625전쟁을 일으켰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김일성 모습입니다.

1949년 3월 김일성의 3번째 모스크바 방문이 이어졌습니다. 방문의 공식적인 목적은 소련과 경제문화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말해서 경제 원조를 받기 위해 방문한 것입니다.

 

 

하지만 김일성이 모스크바로 떠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남한과의 전쟁을 소련에 허락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스탈린은 전쟁 지원을 해주고, 전쟁도 승낙하지만, 선제공격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시 남한 병력 > 북한 병력이었기 때문에 먼저 북한이 쳐들어갔을 때 미국이 남한을 도와주면 골치 아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한이 먼저 공격하면 반격해가며 남한을 통일할 것을 주문한 것입니다.

 

1940년대에는 군사분계선으로 38선이 있었는데요. 지금이야 핸드폰이 있고 기술이 있으니까 자기 위치의 위도와 경도를 알 수 있지만 저 당시에는 어디가 38선인지 불분명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남한과 북한 군인은 국지전으로 전투를 많이 치렀는데요. 김일성은 이것을 이용할 생각이었습니다.

 

1949년 1월~10월 38선 충돌 통계는 아래입니다.

북한군 출연 횟수 563회

교전에 참여한 북한군 병력 70,625명

교전에 참여한 한국군 병력 46,073명

 

주요 교전 지역은 옹진, 청단, 연안, 백천, 개성, 고랑포, 포천, 동두천, 춘천, 원대리, 주문진입니다.

 

북한에서는 4,214명이 전사하고, 한국 측에서는 320명이 전사했습니다.

 

이 정도로 38선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매일 1.5건의 군사적 충돌이 있었던 것입니다.

 

1945년 5월 남북 병력 규모는 아래입니다.

한국 육군 71,000명, 북한 육군 46,000명

 

1949년 9월 3일 김일성은 자기 비서를 통해 전쟁 시나리오를 소련에 전달합니다. 구체적인 개전 지역도 명시했는데요. 바로 옹진반도에서 개전하려고 했습니다.

 

 

위의 빨간색 원이 옹진반도인데요. 남한과 땅으로 연결된 곳이 없으므로 남한의 지원을 받기 힘든 지역입니다. 지금은 북한 땅이지만 당시 38선은 옹진반도의 정중앙을 관통했습니다.

 

 

김일성의 개전 시나리오는 옹진반도를 먼저 점령하고 동쪽으로 진군하여 개성, 서울까지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김일성은 2주 안에 남한을 점령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조금 지체되면 2달 만에 점령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949년 9월 15일 주북한 소련대사 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에 아래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남한 측이 38선 주변을 침범하면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것으로 여기고 공격할 수 있습니다.”

 

원래 38선에서 군사 교전이 자주 일어나니까 이것을 빌미로 남한이 먼저 쳐들어왔다고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1949년 9월부터 전쟁 전까지 남침 계획이 점차 구체화합니다.

 

 

위의 선이 애치슨 라인이란 것인데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던 애치슨이 발표한 극동 방위선입니다. 저기에 한국이 포함 안 되어 김일성은 남한을 쳐들어가도 미국이 참전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1950년 3월 30일 김일성과 스탈린이 모스크바에서 비밀회담을 하는데요. 거기서 스탈린이 전쟁을 허락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에 미국이 개입하거나 군사적으로 어려워도 소련은 도와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마오쩌둥에게 군사 지원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때 중국도 공산당과 민주당이 3년 동안 내전을 하다 공산당의 승리로 내전이 끝납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중국에도 전쟁 허락을 받고, 전쟁 지원을 받기로 약속도 받습니다.

 

중국은 1949년 7월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의용군 2만 명을 보내주고, 1950년 1월에는 16,000명을 북한에 지원합니다.

 

소련은 1억 3천만 루블 규모의 무기를 지원합니다.

 

1950년 6월 21일 남한이 전쟁 계획을 눈치챘다는 첩보가 북한군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북한은 옹진에서 개시하려던 계획을 38선 전역에서 동시 개전을 합니다.

 

이상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다시는 625전쟁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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