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 의 사실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위안부 할머니의 사실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37년 12월 13일 중일전쟁이 발발합니다. 일본군은 대규모의 중국 민간인들을 사살하고 수만 명의 중국 여성을 강간합니다. 그 이후 일본 부대에 성병이 빠르게 퍼집니다.

 

 

위의 사진은 일본군에게 탈출하여 연합군 측에 투항한 위안부 할머니들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성병 확산 방지를 위해 상하이 파견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는 일본군 위안소 설치를 제안합니다.

 

부인 및 아동의 매매금지에 관한 국제 조약이 있는데요. 일본에서는 21세 미만의 미성년 매매가 본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식민지이기 때문에 위의 조약이 적용되지 않아 10대의 어린 여자들이 위안부로 많이 끌려갔습니다.

 

조선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집할 때는 후방에서 잡일을 한다든지, 간호조무사로 일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으로 인원을 모집했는데요. 실제로 일하러 간 곳은 위안부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위안소 일을 하면서 성병에 걸리는 일도 많으셨는데요. 당시 매독 치료를 위해 살바르산 606이라는 약물을 사용했는데 이게 독성물질인 비소 화합물입니다. 그래서 성병에 걸려서 고생도 하시고, 비소도 복용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본 군대는 위계질서가 강해서 상관이 부하를 폭행하는 일도 많았는데요. 일본군에서 제일 말단 군인들은 화풀이를 군대 내에서는 할 때가 없으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행동도 했다고 합니다.

 

 

또 위안부 일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지니까 아편 없이는 살지 못하겠는 분들도 많아서 아편 중독자가 되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위안부로 가면 창씨개명을 해서 일본 이름을 사용했고요. 옷도 기모노를 입혔다고 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일본 군인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병이 있어서 그렇게 했는데요.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연합군 측에 붙잡혀도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일본인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부산항에 모인 4차 위안 단은 703명입니다. 1차 2차 3차는 몇 명인지 모르는데요 저 정도로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셨습니다.

 

일본은 위안부를 활용하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문서들을 다 소각했는데요. 현재 남아있는 위안부 관련 자료들은 연합군이 일본 통신을 도청해서 기록한 것들입니다.

 

일본은 현재도 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위안부 관련 사과가 제일 먼저고요. 그다음 일본 교과서에 해당 내용을 실어야 합니다.

 

이상 위안부 할머니의 사실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일본은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나라입니다. 지금 정권은 경제적 이유로 잘 해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돈이 다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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