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 공포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군인들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유신체제가 시작됩니다.
위의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입니다.
유신(維新)의 뜻은 ‘낡은 제도를 고쳐서 새롭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중국 고전인 서경과 시경에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유신이란 단어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한 단어는 아닙니다. 이 단어가 유명해진 것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쇼와 유신 덕분입니다. 이런 단어를 박정희가 사용한 것입니다.
실제로 박정희는 메이지 유신을 “아세아의 경이요, 기적이 아닐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래는 유신헌법의 내용입니다.
1. 유신헌법은 직접선거가 아니고 간접선거입니다. 투표를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니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통대)이 합니다. 통대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입니다. 국민 주권이 아니라 통대 주권입니다.
2.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하였습니다. 근데 대통령을 할 수 있는 횟수에 대해 제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3. 민주주의는 3권분립이라고 해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 견제하며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입니다. 근데 유신헌법에서는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도 있고,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이 추천하면 통대가 선출할 수 있습니다. 또 대통령이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파면하는 권한까지 가집니다. 3권을 모두 대통령이 갖는 것입니다.
4. 대통령에게 자유가 무한하게 주어집니다.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하면 언제든 헌법 효력을 정지할 수 있습니다. 또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형까지 시킬 수 있습니다.
유신헌법을 통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 장기집권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진 것입니다.
유신헌법 공포의 표면적 이유는 남북 대화 뒷받침과 급변하는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인데요. 실질적 이유는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가 유신헌법 공포를 한 이유는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김대중을 이기긴 했지만 근소하게 이겨 다음 선거에서는 이길 수 있을는지 불투명해서입니다.
유신헌법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국적 민주주의란 단어도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유신헌법이 한국적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위의 사람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입니다.
1972년 5월부터 유신헌법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주도한 사람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입니다. 이후락이 자기 휘하에 있는 실무진 5명과 함께 극비리에 작업했습니다. 2인자인 김종필도 유신 발표 사흘 전에 유신헌법에 대해 들었을 정도로 굉장히 극비리에 진행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김기춘입니다. 유신헌법의 실무진 중 한 명이었습니다.
유신헌법은 대만과 프랑스 등에서 배워온 것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대만의 장개석은 28년간 종신으로 총통을 했고요. 스페인의 프랑코도 36년간 종신으로 집권도 했습니다. 이런 나라들을 살펴보며 유신헌법의 밑바탕을 배웠습니다.
당시 미국은 미국 대선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이런 한국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미국이 개입하지 못하게 미국 대선 중에 발표한 것입니다.
유신발표를 하고 야당 국회의원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소환한 다음 고문을 하며 유신을 지지할 것을 다짐받았습니다.
유신발표를 하고 유신에 대한 홍보를 엄청나게 했습니다. 유신을 하면 경제적으로 풍족해 잘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자유는 조금 내려놔야 한다고 홍보를 했습니다.
위의 그림은 유신헌법 홍보물입니다.
방송을 통해 유신을 홍보한 횟수는 아래입니다.
유신지지 단독 해설 218회
유신 관련 좌담 방송 398회
유신 비전 제시 특별 프로그램 58회
유신 스폿 1,268회
1972년 10월 17일 ~ 11월 21일까지 총 1,942회 유신 방송을 송출하였습니다.
1972년 11월 21일 유신헌법 국민투표를 하는데요. 국민투표 상황에서도 계엄령은 해제하지 않았고, 군인들이 사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투표율 91.9%, 찬성률 91.5%로 유신헌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발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박정희 정권이 보여줬는데요. 이런 점을 인지하고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