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 업적에 대해 알아봅시다

장수왕의 업적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장수왕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장수

하셔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 시대에 98세까지 사셨는데요.

폭군이 아닌 성군이 장수하셔서

고구려라는 나라가 최전성기를 맞이하며

백성들의 삶이 안정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의 지도는 장수왕시 남하정책을

펴 정복한 영토와 장수왕 그림입니다.

장수왕의 업적 중에 제일 처음에 꼽는 것은

역시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한 것인데요.

427년에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국내성(현재 중국 랴오님 성 환런 현에 위치)

은 만주 쪽에서는 따뜻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곳 맞는데요.

산지로 둘러 쌓여 있어서 방어하기는 좋지만

너무 좁다고 합니다. 평지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평양으로 천도할 계획이 이미 광개토대왕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수도를 옮기는데 지배층들의 반대가 별로 없이

수월하게 옮길 수 있었거든요

장수왕은 그런 평양 천도 계획을 실행한 것일 뿐이라고

하네요.



평양은 대동강 유역의 넓은 평야가 있어

경제적 기반이 탄탄 했고요

만주와 왜 중국 황해로 쉽게 갈 수 있는

허브 같은 위치에 있어서 선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고구려는 고구려로 이주하는 중국 이주민들을

평양에서 수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양에는

다양한 문화들이 축적되었다고 합니다.

 


장수왕의 또 다른 업적은 안정적인 외교를

해서 전쟁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장수왕 재위 시절 중국은 516국을 지나

남북조 시대 였어서 위의 지도 같이 되었는데요.

고구려는 유연, 북위, 송과 모두 조공을

(중국의 주변국이 정기적으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

하여 예물 등을 헌상하는 행동인데 조공을 받으면 중국에서

도 답례로 하사품을 보내는 것) 바치는 등 현재로

보면 교류를 유연하게 하여 전쟁이 없었답니다.

유연, 북위, 송은 서로 개싸움을 하는 상황이라

고구려와도 싸울 상황이 아니었고요

고구려 자체가 강하기도 해서 넘보지 못했답니다.


또 다른 장수왕의 업적은 풍홍을 받아준겁니다.

북연이 북위에게 정복되게 되자

북연의 마지막 왕인 풍홍이 고구려에 망명신청을

하는데요. 북위와 북연 2나라 모두와 원만한 관계

이었던 고구려 장수왕은 풍홍의 망명을 받아줍니다.

풍홍이 망명할 때 북연의 지배층 5만 명 정도가

같이 망명했다고 합니다. 풍홍이 이끌고 올 5만 명의

북연 지배층이 고구려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바둑과 충주 고구려비

사진입니다.

장수왕의 업적중 또 배놓을 수 없는 업적은

평양천도로인한 남하정책입니다. 4753만 대군을

이끌고 한성을 공격하는데요.

7일 만에 북성을 점령합니다.

당시 남하정책을 한 이유는 평양천도로 인한

수도 안전화도 있었지만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벋어나기 위해

백제와 연합을 구축한 것도 이유였습니다.

당시 백제는 중국의 북위에게 고구려를 치면

자신의 자식들이 북위로 가서 노예처럼 일할

것이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백제는 위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스파이 승려 도림을 먼저 백제에

보냅니다.

도림은 바둑을 잘 뒀는데요. 당시 백제왕인

개로왕도 바둑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이 친해져 도림이 백제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토목공사를 부추기고 실제로 해 백제의

국력이 약해졌을 때 고구려가 친 것입니다.

 

당시 고구려는 남성골산성(지금의 세종시)까지

군대가 주둔했는데요. 금강, 남하강유역까지 지배를

했습니다.

거기에 따른 대표적 유적은 충주 고구려비인데요.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비석으로 5세기 무렵

고구려의 남진과 삼국의 관계를 알려주는 비석입니다.

 

이상 장수왕의 업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장수왕도 광개토대왕같이 훌륭한 업적이 있으신데요.

태평성대를 유지하신 장수왕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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