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릉대전 정사 기준으로 알아봅시다

이릉대전 정사 기준으로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삼국지 삼대 대전은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입니다. 이릉대전은 유비와 손권이 싸워 손권이 이긴 전쟁입니다. 삼국지는 정사가 있고,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이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삼국지 이야기는 삼국지연의 즉 소설입니다. 여기서는 정사 기준으로 이릉대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위의 그림같이 적벽대전 후 형주 지역을 유비가 차지합니다.

208년 손권과 유비 연합군은 적벽대전에서 조조에게 승리합니다. 하지만 그 후 손권과 유비는 갈등이 생겨납니다.

 

 

손권은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를 따라가 강릉 지역도 공격해 차지합니다.

 

언뜻 보면 형주 지역이 땅이 넓기 때문에 유비가 큰 수혜자처럼 보이는데요. 형주지역은 옛날부터 이민족의 땅이라 자체 인구수가 얼마 없습니다. 그래서 유비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유비는 성도, 한중, 백제성이 있는 익주로 쳐들어가려고 하는데요. 익주로 쳐들어가려면 강릉이라는 입구가 필요했습니다. 강릉은 동맹인 손권이 차지한 땅인데요. 그래서 강릉을 쳐들어가지 못하니까 손권에게 빌려달라고 합니다. 주유는 손권에게 빌려주면 안 된다고 하는데요. 손권은 많은 고민을 한끝에 빌려줍니다.

 

그리고 손권은 여동생을 유비와 결혼시켜 동맹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익주(지역명)는 현재의 쓰촨성과 충칭시 일대로 산지에 둘러싸인 내륙 분지이자 농업 생산력이 뛰어난 지역입니다. 유비가 익주를 눈독 들입니다.

 

당시 익주는 유장이라는 유비의 종친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조조가 안중이라는 곳을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것을 유비가 해결해 주겠다며 유장으로부터 군사를 빌립니다. 그리고선 한중에 간 후 민심만 수습하고 아무것도 안 합니다. 이때 손권이 유비에게 조조를 같이 치자고 연락이 옵니다. 그래서 유비는 유장에게 군사를 또 빌립니다.

 

그렇게 유장에게 빌린 군사를 가지고 유비는 유장을 칩니다. 그래서 익주를 유비가 차지합니다.

 

손권은 몇 년 전에 유비에게 같이 익주를 치지 않을래? 라고, 물어봤는데 당시 유비는 유장이 같은 한실 종친이라 칠 수 없다고 했으면서 이제와서 혼자 익주를 쏙 빼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손권도 나름 화가 났습니다.

 

손권은 그래서 빌려줬던 강릉을 돌려달라고 했는데요. 유비는 갖은 핑계를 다 대면서 돌려주지 않습니다.

 

 

유비가 익주 땅도 차지하여 위의 세력도처럼 됩니다.

형주, 익주를 차지한 유비는 조조와 손권에 대항 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뒤 조조가 익주의 북쪽을 공격하여 차지합니다. 그래서 유비가 다시 한중을 공격하는데요. 이것이 한중공방전입니다.

 

 

조조는 한중을 점령하고 한중을 계륵(닭갈비)이라고 생각합니다. 먹자니 맛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을 뜻하는 계륵이라는 단어가 저 때 생겨난 것입니다. 조조는 결국 한중을 버리고, 한중은 유비가 차지합니다.

 

한중은 한나라 초대 황제인 유방이 한중의 왕으로 되어 그것이 커져 한나라 건국을 한 곳입니다. 유비가 마침 한나라 황실 사람이라 한중은 유비에게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유비는 한중왕으로 거듭납니다.

 

 

위의 지도처럼 관우가 번성 지역을 쳐들어갑니다.

이때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는 조조의 번성 지역을 칩니다. 이것을 번성 전투라고 합니다.

번성 위에는 허도라는 지역이 있는데요. 허도는 조조의 근거지입니다. 그래서 조조가 당시 천도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관우의 위세가 중원을 진동했습니다.

 

이때 조조의 참모 사마의가 조조에게 조언합니다. 손권과 유비의 관계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이가 안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권으로 하여금 관우의 배후를 치게 하면 관우가 번성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219년 조조 군을 무섭게 몰아치며 천하를 진동시킨 관우는 조조와 손잡은 손권에 의해 포위되고 맙니다.

 

손권이 강릉을 무력으로 빼앗자, 관우는 깜짝 놀라 번성에서 강릉으로 이동하는데요. 하지만 손권의 부대에 쫓기다 잡히어 결국 참수당합니다.

 

장비 또한 관우의 죽음 후 더 포악하게 부하 장수들을 다루다가 부하 장수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유비는 이때부터 한중왕이 아니라 관우 형이 된 것입니다. 손권이 화친을 청하지만 유비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걸 무시하고 유비는 손권을 공격하는데요. 이것이 바로 이릉대전입니다.

 

이릉대전은 221년 시작합니다. 이릉대전 초기에는 유비가 전투에서 이깁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너무 가져 유비가 적진 깊숙이 쭉 들어가는데요. 또 본인이 나는 형주의 지리를 잘 안다는 자만심도 있습니다.

 

그래서 장강 남쪽에 700리에 걸쳐 긴 진영을 유지하는데요. 실제로는 길어봐야 400리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위의 빨간색 원이 이릉이라는 지역입니다. 저곳에서 일어난 전쟁이 이릉대전입니다.

육손이 유비 진영에 불화살을 쏘면서 엄청난 공격을 해 유비가 패배합니다. 죽은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고 장강 일대에 병사들의 시신이 떠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유비는 이릉 뒤쪽에 있는 백제성까지 후퇴합니다.

 

유비는 백제성에 머물다가 다음 해 223년 63세의 나이로 죽습니다.

 

이상 이릉대전 정사 기준으로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아쉽네요. 그러게 유비는 동맹하고 관계를 좋게 관리를 잘하지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를 보며 배울 점은 배웁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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