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전쟁 원인 에 대해 알아봅시다

독소전쟁 원인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독소전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평화조약을 깨고 독일이 소련을 공격한 전쟁을 뜻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 전쟁도 있었고, 독일과 영국전쟁도 있었는데요. 독프전쟁, 혹은 독영전쟁이라고는 잘 안 하고 왜 독소전쟁이라고는 말하는지 이유는 사망자가 많아서입니다.

 

 

위의 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 사망자 수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독소전쟁으로 인해 소련 사망자가 1,000만 가까이 나왔습니다. 독일도 500만 정도의 사망자가 나왔는데요. 당시 한반도 인구수가 3,000만 정도였는데 우리나라 인구의 1/3 숫자가 죽은 것입니다. 저 정도로 너무 많은 인명피해가 크게 나서 독소전쟁이라는 말이 떠오른 것입니다. 소련에서는 사람이 1명이라도 죽지 않은 집안이 없었다고 합니다.

 

 

독소전쟁이 일어날 시 독일의 지도자는 히틀러였고요. 소련의 지도자는 스탈린이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1939년 10월 9일 미국 일간지에 개재된 풍자 그림입니다.

 

 

위의 그림처럼 히틀러와 스탈린이 독소불가침 조약을 체결합니다. 독일과 소련이 서로 쳐들어가지 않겠다고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저 그림의 밑에 영어의 뜻은 “이 밀월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까?”입니다. 2년 전에 독소전쟁을 예견한 말입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은 이유는 아래입니다.

히틀러 입장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을 제압해야 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뒤통수가 안전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뒤통수 안전을 위해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원래 히틀러의 나치즘을 막기 위해 영국, 프랑스와 손을 잡았는데요. 근데 영국, 프랑스는 자본주의 진영이고, 소련은 공산주의 진영이라 두 그룹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영국, 프랑스와 소련이 제대로 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인물이 히틀러입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이 그렇게 체결된 것입니다.

 

1941년 6월 22일 일요일 새벽 3시 30분 독일이 소련을 선제공격하며 독소전쟁이 시작합니다.

 

히틀러는 기본적으로 인종주의자입니다. 인종주의는 인종 사이에 유전적 우열이 있다며 지배 – 피지배를 합리화하는 사고방식인데요. 이런 생각 때문에 히틀러는 독일의 게르만인 혹은 아리아인이 전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지배를 받으며 최종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인종이 유대인, 집시, 슬라브인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소련의 주류가 슬라브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칠 거 소련이 더 강해지기 전에 선제공격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류 독소전쟁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1941년 히틀러의 지령입니다.

“볼셰비키(소련)와의 전투에서 인도주의 원칙이나 국제법 준수는 고려돼서는 안 된다.”

 

이렇게 당시 히틀러는 소련인을 사람으로 안 보고 해충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무자비하게 제거했고요. 소련 입장에서도 히틀러에게 지면 2등 시민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 죽을 분위기이기 때문에 완강히 대항했습니다.

 

아래는 1929년 체결한 제네바 협약 중 포로의 대우에 관한 협약입니다.

“전쟁포로들은 항상 인도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며 특히 폭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제네바 협약이 있어도 히틀러는 소련인을 사람으로 안 봤기 때문에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독일이 데리고 있던 영국군과 미국군의 포로 사망률은 3.5 ~ 5.1%였는데요. 소련군 포로 사망률은 58%였습니다. 이 정도로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히틀러는 슬라브인을 몇 명 죽였는지 보고 하게 만들어서 더 경쟁적으로 슬라브인을 많이 죽이게 유도했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전쟁을 발발하면서 폴란드를 먹은 후 덴마크는 바로 항복하고요. 노르웨이는 2달 만에 항복하고, 벨기에는 2주 만에 항복합니다. 프랑스도 6주 만에 항복하는데요. 영국이 항복을 안 하고 계속 버텼습니다.

 

영국이 그렇게 버틴 이유는 소련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독일은 보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소련을 점령하면 영국도 금방 항복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독소전쟁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히틀러가 스탈린을 안으며 등에 칼을 꽂는 것을 보여주는 풍자만화인데요. 말풍선의 뜻은 “동무! 용서하시오 하지만 지금이 너무 좋은 기회 같아서”입니다. 스탈린이 손에서 놓치는 문서는 ‘독소불가침 조약’이라 쓰여 있습니다.

 

스탈린은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긴 했지만, 군사적으로 독일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42년까지 군사적 대비를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시작했는데요. 히틀러가 이를 알고 대비가 완료되기 전에 미리 소련을 공격한 것입니다. 이것도 독소전쟁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전초 소련군 탱크 90%가 파괴되고, 전투기 800대 이상이 지상에서 파괴됩니다. 독일군은 소련 영내 400km까지 진출하는데요. 소련이 나중에는 의외로 방어적으로 잘 버팁니다. 그렇게 겨울이 와 추위 때문에 독일이 많이 곤란해집니다. 나폴레옹의 전철을 밟는 것입니다.

 

아래는 독소전쟁 원인 3가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1. 히틀러의 슬라브인에 대한 혐오

2.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전제조건

3. 적절한 시기

 

이상 독소전쟁 원인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저런 대규모 전쟁은 방어 전쟁이 아니라 공격 전쟁이라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재자만을 위한 것입니다. 보통의 국민은 전쟁에 동원되면 대부분 죽게 마련이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다고 해서 국민은 좋을 게 거의 없습니다. 이런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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