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전투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선제공격하며 독소전쟁이 일어납니다. 히틀러의 독일군은 부대를 3개의 집단으로 나눠서 소련을 쳐들어갔는데요. 한 그룹은 레닌그란드로 진격하고, 한 그룹은 모스크바로 진격하고, 한 그룹은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했습니다.
위의 그림같이 독일군은 소련으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레닌그라드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레닌그라드는 모스크바 전에 러시아 수도였습니다.
1924년 레닌이 죽었는데요. 레닌그라드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레닌에 바치는 도시란 뜻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입니다.
위의 사진이 현재 레닌그라드의 모습입니다.
레닌 그라드에서는 역사적으로 러시아를 바꿀만한 혁명이 3번이나 일어났습니다. (1905년 혁명, 1917년 2월 혁명, 1917년 10월 혁명) 그래서 역사적, 문화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레닌그라드를 탐낸 또 다른 이유는 소련에서도 손꼽히는 공업지대였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군수물자가 생산되기 때문에 정신적 타격뿐만 아니라 군수 물품 타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독일군은 레닌그라드 바로 앞까지 다 갔는데요.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레닌그라드에서는 어떻게든 도시를 지키겠다는 불사 항전의 자세로 있는 소련 군인들과 시민들이 있으므로 도시로 들어가서 시가전을 하면 독일군이 막대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여 굶어 죽게 하여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을 추구합니다. 독일군은 900일 정도를 봉쇄합니다.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에 대해 중요하게 배운다면 소련은 레닌그라드 전투를 중요하게 배운다고 합니다.
먹을 게 없다 보니 영양부족 병에 많이 빠집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봉쇄될 당시 위와 같은 흑 빵 한 조각으로 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하루 빵 배급량이 113g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을 900일간 한 것입니다.
이래서 레닌그라드 사람들이 입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었다고 합니다. 개나 고양이, 새도 잡아먹고요. 혁대나 구두는 가죽으로 만든 것이니까 물에 불린 다음 끓여 먹었다고 합니다. 또 집에 벽지를 벽에 붙일 때 풀로 붙이니까 벽지를 뜯어서 안쪽을 긁은 다음 그 풀을 끓여서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육도 먹고, 인육을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이 타냐의 모습입니다.
안네의 일기처럼 레닌그라드 전투의 참혹함을 알리는 타냐의 일기란 것이 유명합니다. 타냐는 당시 만으로 10살 정도였습니다. 타냐는 결국 1942년에 탈출은 하는데요. 영양실조 때문에 2년 뒤 죽습니다.
봉쇄로 인해 첫해 겨울 하루 사망자 수가 4천 ~ 5천 명 정도였습니다. 1941년 12월에는 하루 사망자 수가 1만 명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큰 희생이었기 때문에 비인도적인 행위였다. 그냥 항복하고 살았던 게 어떠했을까 하는 의견도 있는데요. 당시 레닌그라드에서 독일의 수십만 북부군을 묶어 두고 있었기 때문에 중부나 남부에 독일 북부 군이 지원을 나가지 않아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 레닌그라드 전투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정말 너무 안타까운 전쟁이네요.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