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공명 출사표 던질 때의 상황을 알아봅시다

제갈공명 출사표 던질 때의 상황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촉의 관우와 장비가 죽고 223년 유비마저 숨을 거둡니다. 그 후 제갈공명은 유비의 아들인 촉한 황제 유선을 모십니다. 제갈공명은 가만히 있으면 조조의 위나라에 자신의 촉나라가 먹힐 것을 알고, 미리 위나라에 선빵을 날리기로 결정하는데요. 그런 북벌 각오를 유선에게 문서로 전달하는데 그것이 바로 제갈공명 출사표입니다. 227년 제갈공명은 출사표를 촉한 황제 유선에게 건넵니다.

 

 

위의 사진이 중국의 무후사라고 제갈공명 사당에 있는 출사표 글씨를 새긴 것입니다. 출사표의 뜻은 군대를 이끌고 나갈 때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란 말입니다.

 

 

아래는 출사표의 일부분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글입니다.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있지만 익주는 피폐하니 이는 진실로 위급하여 존망이 걸린 때입니다. (...) 선제께서는 신을 비천하다고 생각지 않으시고 외람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춘 후 삼고초려 하여 당시 세상일을 신에게 물었습니다. (,,,) 바라는 바는 우둔한 재능을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을 물리치고 한나라 황실을 부흥시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 이제 멀리 떠나는 마당에 글을 올리려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어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갈공명은 한나라 황실의 부흥을 위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라 황실 핏줄인 유비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나라 황실의 부흥을 위해 조조를 정벌하려 했던 것입니다.

 

권력 찬탈을 꾀한 다른 보정 대신(예: 동탁)과는 달리 충성심으로 국정을 다스렸습니다. 실제로 제갈공명은 최고의 관직을 오랜 시간 하는 동안 재산이 조금도 늘지 않았습니다.

 

제갈공명은 출사표를 던지기 5년 전부터 북벌 준비를 합니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요. 군자금을 모으고, 후방을 안전하게 진압합니다. 이렇게 5년간 준비한 후 위나라에 쳐들어간 것입니다.

 

228년 1차 북벌을 시작합니다. 군대를 두 집단으로 나눠서 한 집단은 조자룡이 지휘하게 하고, 다른 한 집단은 자신이 지휘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조자룡의 부대는 먼저 장안 쪽으로 진격하게 합니다. 그래서 조조 군이 장안이 목표인지 알고 거기에 집중할 때 자신의 부대는 기산을 거쳐 천수 방향으로 쳐들어가 허를 찌른 것입니다. 북벌 초기 제갈공명의 촉군은 승기를 잡는데요. 최전방에 있던 마속의 부대가 제갈공명의 말을 안 들어서 많은 군사를 잃고 패퇴합니다.

 

 

그래서 1차 북벌은 실패합니다. 제갈공명은 마속을 굉장히 아꼈는데요.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전투에 패해 처형합니다.

 

제갈공명의 북벌은 228년 1차에서 231년까지 3차례 진행하는데요. 모두 실패합니다. 실패할 때마다 그 이유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면서 계속 일을 진행합니다.

 

제갈공명은 223년에 오와 화친을 하여 안전망을 구축합니다. 234년 제갈공명은 5차 북벌을 하는데요. 이번에는 손권의 오나라와 합동 공격을 하기로 얘기가 되어 있는데요. 그런 후 먼저 10만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간 것입니다. 근데 마침 오나라에 역병이 심하게 돌아서 오나라가 출진을 못합니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사마의의 위나라와 대치를 하다 결국 후퇴를 합니다.

 

제갈공명은 234년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둡니다. 원래 위(내장)도 안 좋고, 스트레스도 많았는데요. 피를 토하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 후 사마의는 249년 반란을 일으켜 위나라의 정권을 잡고요. 촉나라를 공격해 정복하고(263년), 오나라도 공격해 정복(265년)합니다. 그리고 사마씨 가문이 황실이 되어 삼국지 역사는 끝이 납니다.

 

이상 제갈공명 출사표 던질 때의 상황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삼국지 인물 1위가 제갈공명이라고 합니다. 청렴하게 정치를 하셔서 너무 마음에 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기 잇속만 챙기려고 머리 쓰지 말고 청렴하게 일을 진행하는 습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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