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공주의 역사적 진실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정명공주는 광해군의 이복동생이자 선조의 딸인데요. 화정이라는 드라마로 알려진 분입니다. 이런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정명공주의 역사적 진실은 어떠했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정명공주를 모티브로 만든 드라마인 화정포스터와 정명공주관련 가계도인데 중요한 사람은 빨간색 원으로 표시해 놨습니다. 정명공주는 서예를 했는데요. 선조 글씨체하고 똑같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인 인목왕후와 감금되어 살 때 아버지와 똑같은 필체를 연습하며 어머니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 쓴 서예 중에 하나가 화정이라는 글씨입니다. 원래는 8자를 썼는데 지금 전해져 오는 것은 화정이라는 글씨라고 합니다. 빛나는 정치라는 뜻입니다.
광해군이 왕이 되고 광해군은 정명공주의 어머니인 인목왕후와 아들인 영창대군을 견제 합니다. 마침 반란이 일어나는데요. 광해군은 그 반란의 주모자로 정명공주의 외할아버지(김제남)를 지목합니다. 그래서 정명공주의 남동생인 영창대군은 유배 보냈다가 거기서 죽게 되고요(1614년 2월, 9살) 인목왕후는 서궁으로 강등됩니다. 정명공주는 평민이 되어 인목왕후와 함께 석어당에 같이 갇혀서 삽니다. 인목왕후는 다음 왕 지명권이 있어 견제하는 거고요 계속 지켜보며 견제했다고 합니다. 인목왕후와 정명공주가 같이 석어당에 갇혀 살 때 매우 빈곤하게 살았지만 정명공주는 서예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623년 4월 11일 인조반정이 일어나는데요. 서인 세력이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킨 사건입니다. 인조반정이 일어날 때 석어당에 있던 인목왕후를 서궁에서 다시 인목왕후로 복귀시고요(왕후는 다음 왕 지명권이 있습니다.) 인조를 왕으로 지명시킵니다. 그래서 평민 신분이었던 정명공주는 다시 공주로 복귀 되고요 왕실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으며 배우자를 물색합니다.
정명공주는 당시 21살이었는데요 조선시대에 21살이면 노처녀입니다. 전국에 배우자감을 찾는다고 공고를 했는데요. 9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홍주원이라는 명문가 집안 남자를 약혼상태였는데 파혼시키고 정명공주와 결혼시켰다고 합니다.
인조는 정명공주에게 집부터 시작해서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지원하는 파격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나중에는 신하들이 반대하느냐 정명공주를 지원하고 싶으시면 왕 개인 돈으로 지원하십시요라고 했는데도 계속 지원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인조 관련 사진입니다.
인조는 반정으로 왕이 된 사람이라 왕의 정당성이 부족하고 자기도 반정이 나서 폐위될까 두려워했는데요. 반정이 일어나게 되면 정명공주의 어머니인 인목왕후가 왕 후계자를 지목 할 수 있기에 인목왕후와 정명공주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며 계속 감시하고 의심했다고 합니다. 견제도 해서 인목왕후와 정명공주는 순탄하게만은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명공주는 서예도 안하고 집안 살림만 하면서 독서만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다음은 정명공주가 후손들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나는 원하건대, 너희들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논의하기 좋아하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미워한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손들 사이에 이런 행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듣지 않기 원한다” 소학 中
정명공주는 병자호란당시 피난을 가느냐 배에 자기 재산을 많이 실었는데 피난민들이 타려고 하자 자기 재산을 다 버리고 피난민들을 태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정명공주님 좋으신 분 같네요.
사람이 인생에 역경도 거치고 해야 좀 더 사람이 되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