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업적에 대해 알아봅시다

장영실 업적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장영실은 노비 출신 과학자로써 면천이 되어 업적을 많이 쌓아 벼슬길에 오르는 등 흙수저 출신이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벼슬길을 사르신 분이십니다. 장영실의 업적과 그분은 어떻게 사셨는지 간단하게 알아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장영실과 모습과 장영실의 업적인 자격루 모습입니다.

장영실은 중국인 아버지와(귀화한 중국인) 관노인 어머니에서 나온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인 아버지는 기술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고요 어머니가 관노라(관청에 소속된 노비) 부모님들중 한분이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된다는 원칙으로 장영실도 노비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그 재주가 출증한게 알려져 태종이 장영실을 발탁하게 됩니다.

아래는 세종실록 15년 기록입니다.

장영실은...공교한 솜씨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므로 태종께서 보호하시었고 나도(세종) 역시 이를 아낀다.”

도천법이라고 각 지방을 다스리는 관찰사들이 우수한 인재를 중앙에 추천하는 제도가 있었는데요. 이 도천 법을 통해 중앙으로 가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상의원이라고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의복을 만들고 군내의 재화를 관리 공급하던 관청이 있었는데요. 손기술이 좋은 사람들이 들어가야 하는 곳입니다. 이 상의원으로 장영실이 들어갔습니다. 이천이라고 활자에 정통한 사람이 있는데 이분도 장영실의 후견인 역할을 했습니다. 장영실과 태종이 언제 만났는지는 기록이 없고 도천 법을 통해 중앙으로 진출하지 않았을까만 추측하고 있습니다.

 

장영실은 상의원에서 노비로 일하며 인정을 받는데요. 그래서 명나라로 가는 유학생으로 뽑히게 됩니다. 명나라 유학의 미션은 천문학 관련 서적을 수집하고 곽수경(원나라 천문학자)의 천문의기를 보고 그대로 재현해라입니다. 장영실의 업적인 천문학 관련 발명품들은 이 명나라 유학이후 세종시대에 많이 나오게 됩니다.

 


위의 그림은 장영실의 업적인 장영실 발명품들과 가운데가 옥루 맨 밑이 혼천의입니다.

요즘의 시계는 건전지를 넣어서 전기 힘으로 돌아가는 것인데요. 자격루는 물의 힘과 구슬의 힘으로 돌아가는 시계입니다. 명나라 유학후 이 자격루를 만든 것이 장영실의 업적입니다. 세종은 이 자격루를 보고 조선의 표준시로 정하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자동 물시계인 옥루(물시계)를 만든 것도 장영실의 업적입니다. 그리고 혼전의(천체 관측 기구)와 양부일구(해시계), 수표(물의 높이를 재는 기구), 측우기(세계최초의 우량계)를 만든 것도 장영실의 업적입니다.

이런 활동으로 장영실은 노비에서 면천된 후 별좌(5품 상의원, 오늘날 6급 공무원정도)->사직 종5->호군 정 4->대호군 종 3품순 으로 진급하며 벼슬 활동을 합니다.

 

1442년 세종의 온천행 일정에 맞춰 장영실은 왕이 탈 가마를 만듭니다. 이 가마를 만들고 테스트 하는 과정에서 가마가 약간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영실은 불경죄로 곤장 80대정 도를 맞고 파직 당합니다. 그 후에 장영실관련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단순히 가마를 잘못 만들어서 파직을 당했다기 보다는 당시 노비출신이 왕과 친하게 지내는 등의 행동으로 다른 세력들의 견제를 받아 잘못될 것이 우려해 그냥 파직으로 끝낸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명나라로 압송되어 장영실이 가지고 있는 고급기술들이 명나라에 그대로 흡수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상 장영실의 업적과 삶에 대해 알아보는 자리를 갖았습니다. 신분제도는 능력이 있어도 능력에 맞는 자리를 가질 수 없는 제도입니다. 신라 골품제가 단단하여 망한 것처럼 신분제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하고 발전시킵시다.

민주주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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