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구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동북구성(동북 9)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동북구성은 고려시대 숙종과 예종 때 윤관의 계획 하에 여진정벌을 위해 별무반을 창설하여 17만대군의 별무반을 이용하여 여진을 정벌하여 세운 성인데요 함주, 영주, 웅주, 길주, 복주, 공험진, 의주, 통태진, 평융진이 동북구성입니다. 이런 동북구성을 점령했던 역사적 사실 하에 조선시대 세종때 46진의 영토를 회복하는데 기준점(6)이 되었습니다.

 


위의 동북구성 위치를 나타낸 지도()와 윤관의 초상화(아래)입니다.

위의 지도에서 동북구성의 위치를 나타내는 학설이 3가지가 있는데요. 1 학설은 일본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식민사학적 관점이라 사실로 보기 어렵고요 2학설과 3학설 2개중 1개인데 아직 동북구성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어 시험문제로는 동북구성의 위치가 안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3학설이 유력합니다.

 


1104년 당시 고려는 거란이나 송나라와 사대관계를 하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황제국가였습니다. 황제국가라면 내부적으로 황제국가라는 것을 선언하는 거 이외에도 고려에 사대를 하는 제후국가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인데요. 당시 고려의 제후국 역할은 여진족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진족의 군대가 고려 국경을 침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 숙종은 임간을 보내 여진족을 막게 했는데요. 실패합니다. 그래서 고려는 여진족에게 약탈을 당합니다.

 

그 후 고려 숙종은 다시 윤관에게 여진족 정벌을 맡기는데요. 윤관 역시 여진족 정벌에 실패하고 여진족과 강화를 맺습니다.

 

윤관은 그 후 여진족 정벌을 위해 칼을 가는데요. 그렇게 여진족 정벌을 위해 창립한 특수부대가 별무반입니다. 별무반 창설을 허락한 왕은 고려 숙종인데요. 왕입장에서도 황제국가한테 하극상하는 여진족을 가만히 냅둘수는 없어 여진족을 정벌하려는 윤관을 밀어주게 됩니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윤관과 오연총이 동쪽 국경까지 진군해 병사를 주둔하고 17만 군 병력을 20만이라 칭했다.” 별무반은 17만 대군이라는 기록인데요. 조선시대에도 10만양병설 주장하고 그것도 잘 안된 마당인데 고려시대 17만군이면 국력을 총동원한 숫자라고 보시면 되십니다.

 


위의 그림은 별무반 구성 모습과() 당시의 국제 정세를 나타낸 지도(아래)입니다.

고려 숙종 시기 1104년 별무반은 조직 했고요 그 1년 후 숙종은 승하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왕인 고려 예종이 별무반을 이어받고 별무반은 조직 후 3년 정도 훈련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107년에 여진이 강성해져 변방의 성을 침구하고 있습니다.”라는 보고가 올라옵니다. 그래서 고대하고 고대하던 윤관이 별무반을 데리고 여진족 정벌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후 별무반은 승승장구를 하며 여진족을 정벌하여 동북구성을 획득하고 축조하게 됩니다.

 

동북구성에 대한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사방 경계는 북쪽으로 공험지에 이르기 7백리 동북쪽으로 선춘현에 이르기 7백여 리이다.” 7백여 리는 274km인데요 서울과 부산 거리가 약 390km정도 된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조선시대 세종대왕도 동북구성을 한민족의 고토로 인지하고 46진의 국토를 회복하는데 기준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윤관이 동북구성을 획득하고 성을 축조를 하였는데요. 지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동북구성은 여진족의 생활터전이라 계속적인 공격이 일어났고 나중에는 고려군이 여진족에게 계속 전투에서 지는 상황까지 일어납니다. 동북구성은 성들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 서로 도우며 지키기도 어려운 물리적 환경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여진족이 동북구성을 돌려달라며 화친을 요구했습니다.

 

고려 조정에서는 그 사항관련 투표를 했는데요. 동북구성을 여진족에 돌려주기로 결정을 하고 동북구성을 여진족에게 몇 가지 제안 하에 돌려줍니다.

 

고려가 지키기 어려운 동북구성을 여진족에 돌려주면서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합의를 합니다.

1. 여진족은 고려인들이 동북구성에서 고려 쪽으로 이주 할 때 공격하지 않는다.

2. 여진족은 고려에 자손 대대로 조공할 것을 맹세하다.

3.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 감히 기와 조각 하나라도 고려의 영토에 던지지 않겠나이다.”

 


위의 지도는 여진족의 금나라가 전성기일 때의 지도와() 신의주 지역을 나타낸 지도(아래)입니다.

저런 약속을 여진족은 대부분 지키는데요. 나중에 여진족이 더 강성하여 금나라가 되고 거란을 쓰러트리며 송나라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성해져도 고려는 침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신의주 지역을 금나라가 주어 압록강지역 이남을 온전하게 차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 동북구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동북구성을 그냥 내준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결과는 좋은 쪽으로 흘러가서 다행입니다. 천하를 제패했던 금나라와 우호관계가 되게 해주고 신의주 지역도 획득하는 등 조선시대 국토 회복에도 영향을 주었고요 윤관 장군님은 화병이 나셨겠지만 고려와 조선, 한민족에게는 이득이었습니다. 나중에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도 동북구성 지역에서 활약 많이 하셨지요.

한민족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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