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선제 개헌 된 과정을 알아봅시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된 과정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그전에는 체육관 모여서 국민들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뽑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대통령이 전두환입니다. 그러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선언한 것이 19876.29 선언이고요 이 6.29 선언을 만든 것이 19876월 항쟁입니다. 1987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입니다. 요즘 개봉한 영화 ‘1987’의 소재입니다. 이런 중요 사건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박종철 씨 사진()과 이한열 씨 사진(아래)입니다.

1987년 당시는 말은 민주주의 나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독재국가 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를 열망하고 활동하는 대학생들이 경찰에 많이 끌려가 의문사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19871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인 박종철 씨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갑니다. 거기서 박종철 씨는 수사관들로부터 학교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대라고 추궁을 받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물고문이 있었습니다. 팔다리를 묶고 머리를 물에 담그는 방식이었는데요 이 고문을 받다 박종철 씨는 돌아가시게 됩니다.

 

다음날 새벽 박종철 씨의 아버지와 형이 영문도 모른 채 박종철 씨가 고문을 받던 장소로 끌려옵니다. 그리고선 경찰은 책상을 갑자기 세게 내려치더니 박종철씨 형이 놀라니까 그거보세요 이렇게 책상을 세게 내려치니까 박종철 씨가 놀라서 죽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1987115일 중앙일보 석간에서 박종철 군이 취조를 받다 쇼크사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최초 발행하였습니다.

 

박종철씨 죽음의 감정서에는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인정됨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1987119일 박종철씨 죽음이 고문에 의한 것이지 않느냐는 여론이 끓어오르자 치안본부는 사건발생 5일 만에 고문 사실을 시인합니다. 물고문을 하다 목이 욕조 턱에 눌려 질식사 했다는 내용입니다.

 

1987119일 고문의 주범으로 조한규 경위, 강진규 경사이 구속되는데요. 범인들을 교도소로 이동시키는데 5명이 이동됩니다. 2명을 가리기 위해 사람을 더 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명의 경관은 영등포 교도소로 가는데요. 당시 영등포 교도소에는 해직 기자 이부영씨가 인천 5.3사태 주도 혐의로 구속되어 있었습니다. 고문 경관들은 해직 기자 이부영씨와 같은 동에 배정 받았답니다.

 


6월 항쟁 사진()입니다. 점 같은 게 다 사람입니다. 아래사진도 6월 항쟁 사진인데요. 유명한 사진이지요.

당시 고위 경찰들이 수시로 구속된 고문 경찰들을 찾아 왔는데요. 이들의 접견자리에 보안계장 안유씨도 동석해서 하는 얘기를 다 듣게 됩니다. 그 고문경찰과 고위직 경찰들 하는 말이 둘이 끌어안고 가라 그러면 빨리 재판받게 해서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다. (그리고 금전적 얘기도 나왔다고 합니다.) 1억씩 주겠다. 너희가 덮어써라

구속된 2명이외에 3명이 더 있다고 합니다. 안유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해직기자 이부영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데요. 이부영씨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완전 조작되었음을 폭로하는 편지를 쓰고 한재동 씨라는 교도관 후배에게 편지를 줘 전병용 씨라는 교도관을 통해 김정남 씨에게 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편지는 한재동 씨를 통해 재야운동가 김정남 씨에게 전달됩니다.

 

당시 편지는 5장정도 됐는데요. 구속된 경찰 2명을 활용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고위직 경찰들의 사실들이 상세히 적혀있었습니다.

 

재야운동가였던 김정남 씨는 당시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중앙위원이셨습니다. 김정남 씨는 편지내용을 바탕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성명서를 작성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명서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보냅니다.

 

당시 전두환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논의를 금지하고 개헌 자체도 금지 시켰던 상황입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을 요구하는 야당의 지구대에 조직폭력배를 보내 당원을 폭행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할 정도였습니다.

 

1987518일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 하에 2000여명이 신도들이 참여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인 김승훈 신부가 단상에 올라 성명서를 읽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 은폐 되었다. 그 배후에는 경찰 고위간부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 후 198769일 연세대에서 박종철 고문치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있었는데요. 당시 연세대생이었던 이한열씨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직접적으로 맞아 돌아가시게 됩니다. 이후 정부의 도덕성은 바닥에 떨어졌고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굉장히 많은 인원들이 시위를 계속 합니다. 부산 같은 경우는 경찰들이 보유하는 최루탄이 얼마 안남을 정도로 최루탄을 많이 쏴가며 진압을 했는데요. 그래도 전국적으로 시위는 계속 일어났습니다. 나중에는 구호가 전두환을 물러가라고 하는 구호로 바뀌었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 도 구호로 외쳤다고 합니다. 이것을 19876월 항쟁이라고 하는데요. 6월 항쟁에 정권은 무릎을 꿇고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1987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합니다.

 

이상 대통령 직선제 개헌 된 과정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는데요. 현재의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는 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의 많은 좋은 분들의 희생이 있어서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해주신 선인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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