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고 이복동생들 방번, 방석을 모두 죽인 사건입니다. 조선 설계자 정도전은 원래 재상 중심의 정치체계를 구상하고 있었는데요.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으로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해 죽고 조선은 왕권 중심의 정치체계를 갖습니다. 이방원과 정도전은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죽임을 당할 정도로 심각한 정적이었지만 조선을 왕권중심으로 만든다는 것만 빼고 이방원은 정도전의 정치체계 구상들을 대부분 실현합니다.

 


위의 그림은 이방원 가계도()와 이방원(태종) 어진(아래)입니다.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세자책봉 문제 때문이고 그 다음 이유는 정도전에 의해 왕실과 종친들 세력이 약해지는 것이 우려돼서입니다.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이 일어나기 전 이성계가 많이 아팠는데요 그래서 자연히 이성계의 다음 왕이 될 세자 책봉 문제가 거론되었습니다. 거기서 처음엔 이방원이 거론되었지만 결국은 정도전의 입김과 신덕왕후 강 씨 등의 입김 등으로 이방원의 이복동생 방석이 유력해 집니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여 조선 개국을 연 인물인데요. 자신의 이런 공과 이성계의 아들 중 유일하게 고려시대 때 문과에 합격했던 경력이 있던 자신을 물리치고 완전히 남이 될 수 있는 이복동생이 세자로 유력해진 것에 대해 많은 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이 일어난 가장 큰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이 일어난 두 번째 이유는 정도전에 의해 왕족들 세력이 약해져서입니다. 당시 명나라는 정도전을 압송하라고 하는 등 조선을 굴욕적으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명의 요동 지역을 토벌할 계획을 세우고 군사를 모으는 등 훈련도 시키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이 때 왕실과 종친에 소속된 사병들을 정도전이 나라병사로 흡수하며 훈련도 같이 시키려고 했습니다. 왕실과 종친들은 자신 병사가 빠져나가면 자기 힘이 약해지는 것이니 이 사항에서 불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이 일어난 2번째 이유입니다.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군사를 끌고 정도전을 죽이러 갔을 때 정도전은 측근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요. 이방원에 의해 갑자기 죽게 됩니다.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인 표면적이고 공식적인 이유는 정도전이 역모를 꾀해서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으로 이방원은 주변과 민심을 의식해 스스로 왕이 되지는 않고요 자신의 둘째 친형 방과를 왕으로 추대합니다. 그래서 방과는 조선의 두 번째 왕 정종이 됩니다. 그러나 정종은 본처에서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방원이 조선의 3번째 왕 태종이 됩니다.

 

이성계는 자신이 제일 아끼던 정도전을 죽인 이방원이 싫어 함흥에 가 있었는데요. 이방원 태종은 그래도 이성계가 자기 주위에 있어야 자기의 정당성이 더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성계를 다시 한양으로 모셔오려고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는데요. 그런 차사들을 이성계가 활로 쏴 죽였다고 해서 어딘가로 간 후 아무소식이 없는 사람을 함흥차사라고 하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상 이방원의 난(1차왕자의 난) 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재상중심의 나라를 만들려고 한 정도전이 죽어 너무 아쉽네요. 현재의 총리제도, 민주주의 나라하고 비슷하지 않습니까. 태종이 정치는 잘했다고 하나 그래도 전 정도전이 죽은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조선의 민본정치(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설계하신 정도전 조상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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