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일본 정벌에 대해 알아봅시다

조선 일본 정벌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는데요. 한반도의 해안지역뿐만 아니라 내륙지역까지 왜구가 자주 침입해 노략질을 했습니다. 왜구가 노략질을 할 때는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고 포로로 끌 고가기도 하고, 식량이나 재물을 약탈하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은 대마도를 정벌했는데요. 고려창왕(1389)에 박위가 1차 정벌, 조선 태조(1396) 2차 대마도 정벌, 조선 세종(1419) 이종무의 3차 정벌을 하였습니다.

 


위의 빨간색 원이 대마도 이고(위 그림), 아래 그림은 일본에 개방한 삼포 위치 그림(아래 그림)입니다.

조선 세종은 일본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이종무를 중심으로 227척의 전함과, 17,000명이 넘는 대규모 병력(당시 수군 전체 병력의1/3을 수준) 이끌고, 식량도 65일치를 가지고가는 등 단단히 준비 후 대마도를 정벌하러 갔습니다. 조선 병력이 워낙 대규모라 대마도 왜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전부 도망갔습니다. 대마도는 산이 90%였는데요 그런 산으로 왜구들이 숨어들어 갔습니다.

 


조선군은 일단 해안지역과 마을을 점령하고 3개의 부대 중 1개의 부대만 대마도 산 지역을 수색하여 왜구 잔당을 격퇴하였습니다. 조선 일본 대마도 정벌 성과는 중국인 포로 130여명 구출, 왜구 21명 생포, 왜구 114명 사살, 가옥 1,939호 소실 등입니. 당시 3개 부대 중 산 지역에 수색할 부대를 고를 때 제비뽑기를 했다고 합니다. 산 지역에 수색을 들어간 부대는 180명 정도가 사상 하였지만 결국 조선 일본 대마도 정벌 전쟁은 조선의 승리였습니다. 세종의 조선 일본 대마도 정벌 전쟁 후 일본은 임진왜란 때까지 100여 년간 조선을 침입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일본 대마도정벌같이 무력으로만 일본을 응징한 것은 아닙니다. 왜구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살아야 우리나라를 노략질 안할 것으로 조정은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일본 대마도 정벌과 함께 햇볕정책도 펼쳤습니다. 조선은 염포, 부산포, 제포 의 삼포를 개방하여 왜구가 우리나라에서 무역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 투항한 왜구에게 말단 관직을 주어 조선인으로써 정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투항한 왜인을 수직왜인이라고 합니다.

 

일본을 왜구라고 부른 이유는 기원전부터 중국의 여러 왕조가 일본을 왜라고 불렀습니다. 왜구는 왜 + 도적 구 를 합친 말로써 떼로 다니는 해적 집단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이 나서서 국호를 일본이라고 한 것은 7세기 후반입니다.


 

조선 일본 정벌의 주요 무대 대마도는 일본 의 한 개 이었습니다. 번은 일종의 작은 나라인데요. 일본은 당시 300여개의 번(=나라)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런 번 중에 하나가 대마도 이었습니다. 대마도는 조선과 지리적으로 굉장히 가까워 조선 무역의 거점 또는 중개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노략질하는 왜구들의 본거지도 되었고요 대마도는 산이 90%라 식량생산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많이 노략질 한 것입니다.

 

이상 조선 일본 대마도 정벌에 대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에게 채찍질 만 한 게 아니라 적절히 당근도 잘 준 우리 선조님들은 지혜로운듯합니다. 모든 일은 부드럽게 해결되는 것이 제일 좋지요 백성들을 위해 조선 일본 대마도 정벌을 해주신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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