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 에 대해 알아봅시다

무오사화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무오사화 는 연산군이 사림파를 제거한 사건입니다. 사림파는 당시 성종 때부터 주로 삼사(언론)에 있으며 간언을 하여 왕을 견제하던 세력이었습니다. 이런 사림파가 무오사화 를 계기로 연산군에 의해 제거가 됩니다. 연산군은 가뜩이나 사림파와 삼사가 거슬리고 있었는데 무오사화 의 일이 벌어지면서 얼씨구나 하고 삼사와 사림파를 제거하였습니다.

 


무오사화 의 원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오사화는 사초(史草)로부터 발생합니다. 사초는 사관이 기록한 역사적 기록인데요. 이 사초를 토대로 나중에 실록을 짓는 것입니다. 사초의 내용들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을 뽑아서 실록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초의 내용은 원래 왕이 볼 수 없는데요. 성종실록으로 편찬될 사초의 내용이 연산군에게 들어갔습니다. 이극돈이라는 실록청당상으로 당시 성종실록 편찬의 총 책임자가 계시는데요. 실록 총 책임자이니까 사초를 당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극돈이 사초를 보는데, 사초내용 중에 이극돈에게 안 좋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정희왕후 상중에 기생을 끼고 놀았다는 내용인데요.

 

그래서 이극돈이 김일손이라는 사림파 출신의 실록에 실릴 사초를 쓰던 사관을 회유하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빼달라고 하는 대신 김일손의 승진 같은 것을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협상을 하려고 했는데요. 김일손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극돈이 김일손 에게 앙심을 품고 김일손이 쓴 사초 중에 트집을 잡을만한 것을 찾습니다. 이극돈은 김일손이 쓴 사초들을 다 조사를 했는데요. 그 조사를 맡았던 인물이 유자광입니다. 유자광은 검증된 간신으로 남이장군도 모략하여 죽게 한 핵심 인물입니다. 그 유자광이 찾아낸 것이 세조에 대한 불온한 기록들이었습니다.

 

당시 김일손이 쓴 세조에 대한 기록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세조는 아들에게 후궁들을 여럿 붙여줬는데요 그 아들이 일찍 죽습니다. 그런 후 세조는 그 아들의 후궁 중에 마음에 드는 여자를 은밀히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조를 패륜아처럼 썼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육신은 충신이고, 계유정난은 나쁜 거고, 수양대군이 했던 것은 반역행위라는 식으로 사초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 조의제문이란 것이 등장하는데요. 위에 등장한 내용은 김일손이라는 사관이 쓴 것이고, 조의제문은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라는 인물이 쓴 것입니다. 조의제문 내용은 의제 라는 중국 초나라의 마지막 왕이 향우에게 살해되었다는 내용인데요. 대놓고 세조가 단종을 죽였다고 비판을 못하니까 중국 역사 이야기를 하며 돌려서 세조를 비판한 김종직의 글이 조의제문입니다. 이런 조의제문을 김일손이 사초에 실어 놓았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공개가 되면서 연산군은 할아버지 세조를 모독했다고 분노하고, 사초 작성자 김일손을 포함해 관련자와 함께 삼사, 사림파를 작살내었습니다. 이것이 무오사화 입니다.

 

이렇게 사초를 본 왕은 연산군과 함께, 정조가 승정원일기 중에 아버지 사도세자 관련 글을 삭제하라고 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왕들은 대부분 사초를 보지 않는 법도를 잘 지켰습니다.

 

이상 무오사화 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인데요. MB도 권력을 제대로 잡으려고 미디어 법으로 언론을 통제했었지요. 최순실 사건 때는 언론이 시발점이 되어 탄핵이 성공했고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언론을 잘 지켜 좀 더 공정하고, 정의롭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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