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 저택 에 대해 알아봅시다

딜쿠샤 저택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딜쿠샤 뜻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딜쿠샤 뜻은 힌두어로 행복한 마음’, 혹은 이상향이라는 뜻이고, 산스크리트어로 딜쿠샤 뜻 은 기쁜 마음의 궁전입니다. 딜쿠샤 저택 의 본질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딜쿠샤 저택의 주인이었던 앨버트 W. 테일러 씨와 그의 부인이었던 메리 L. 테일러 씨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저 두 분은 미국인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시 딜쿠샤 저택 에 머물면서 한국의 3.1운동 상황 등을 해외에 알리신 언론인이십니다.

 


위의 빨간 건물이 딜쿠샤 저택입니다. 위의 아래 사진은 딜쿠샤 저택 에 딜쿠샤 라고 써져있는 현판입니다. 딜쿠샤 저택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217(행촌동 1-88)입니다.

19192앨버트 테일러는 미국 통신원 자격으로 고종의 국장을 촬영하고 3.1운동 관련 기사를 작성해 국외에 알린 양심적인 언론이었습니다.


 

1919228일 아내 브루스 T. 테일러가 출산하기 위해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는데요. 거기 간호사들이 독립선언서를 침상 밑에 숨기는 것을 앨버트 테일러 씨가 목격하였습니다. 마침 앨버트 테일러 씨는 미국 AP통신의 통신원이었는데요 당시 상황을 상세히 취재할 기회를 얻고, 독립운동에 관한 보고문을 급히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선 남동생의 구두 뒤축에 기사와 독립선언서 한부를 숨겨 직접 도쿄로 파견했습니다. 그 노력 덕분에 3.1운동의 진실이 무사히 미국으로 전달되어 뉴욕타임즈1919313일 기사가 나왔습니다.

 

앨버트 테일러 씨의 공적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9194, 수원 제암리 전주지역에서 일본군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는데요. 이것을 확인하고 영국 부영사등과 동행해 직접 현장에서 사건을 취재하고 기록하였습니다. 다음해에는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군에 잡힌 손병희 등 독립투사들의 재판을 서양인 최초로 취재하였습니다.(동아일보 1920713)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 1941127일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하는데요. 그래서 경성에 있던 일본인들은 서울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거나 가택에 연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앨버트 테일러 씨는 수용소에 가게 되고, 아내인 메리 테일러는 가택 연금 후 연행 될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앨버트 테일러 부부는 1942년 일본인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다음은 앨버트 테일러 씨의 유언입니다. “나를 경성에 묻어주오. 그리운 내 마음의 고향, 내 아버지의 무덤 곁에 영원히 눕고 싶소.”

 

해방 후 앨버트 테일러 씨는 미군정 통역사에 지원하는 등 서울에 돌아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다 1948년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 앨버트 테일러 씨 나이는 73세이셨습니다.

 

아내인 메리 테일러 씨는 평소 남편의 유언대로 유해를 한국으로 운구해 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딜쿠샤 저택 의 본질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딜쿠샤 저택은 복원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20년 전시관으로 개관할 예정입니다. 서울시는 3.1절 독립운동 유적 답사 프로그램에 딜쿠샤 저택을 답사 코스로 선정하고,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31일 딜쿠샤 저택 복원 공사 현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하였습니다.

 

이상 딜쿠샤 저택 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3.1운동이 우리나라 사람들만 연관된 게 아니라 외국인도 연관되었다는 점에서 딜쿠샤 저택은 보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나라를 위해 헌신해주신 테일러 부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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