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책 에 대해 알아봅시다

탕평책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조선시대는 흔히 붕당정치라고 하는데요. 노론, 소론, 남인, 북인 같은 정치인들이 자기 계열에 좋게 정치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정치를 했습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기본 이념으로 한 국가였는데요. 성리학에서는 백성을 위해서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고 이념적으로 있습니다. 하지만 붕당정치는 백성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기 파(계열)를 위한 정치였습니다. 영조는 이사실을 간파했는데요. 그래서 어느 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든 계열의 사람들을 골고루 배치하는 탕평책 정치를 한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먹었다는 탕평채입니다.

영조가 왕이되고 그 정통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영조 전 왕이자 영조의 형인 경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도 퍼져있어서 영조는 왕의 정통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위기를 맞이한 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인좌의 난 이 일어나는 등 조선 전체 지역에서 난이 일어나는 상황도 영조는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이 토벌군이 반란군을 다 진압했고요. 연류된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까 영조도 관련자 중 핵심인물만 제거하고 나머지 노비같이 어쩔 수 없이 끼거나 말단의 사람들은 그냥 다 풀어주는 정치를 펼쳤습니다.

 

조선 영조시대에 영조의 왕위 정통성에 문제를 삼고 전국에서 난을 일으킨 것을 ‘무신란’이라고 하고요. 고려시대 때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집권했던 것을 ‘무신정변’이라고 하니 용어로 인한 혼돈에 주의하시면 되십니다.

 

무신란은 일부 소론, 남인데 의한 정치 반란이고요. 민중들의 의식 성장이 반영된 민중 저항운동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노론이 영조를 지지하는 세력이었고요. 소론은 영조를지지 하지 않는 세력이었습니다. 무신란 후에 영조는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어 했는데요. 노론과 소론이 서로 싸우기만 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영조는 자신의 지지세력인 노론을 다 쳐내는 행동을 합니다. 노론이 영조를 지지하긴 하지만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행동을 해서입니다.

 

그 후에 영조는 노론과 소론을 균등하게 등용하는 탕평책 정치를 행합니다.

 

물론 그래도 노론과 소론은 영조 말을 안 듣고 계속 싸웠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영조 4년 3월 25일 “조정에서 오직 붕당만을 일삼아 재능 있는 자의 등용을 생각하지 않는다.” “기근이 들어 백성들은 죽을 지경에 처해 있는데도 구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당쟁만을 일삼는 것이 문제이다.” “백성들이 조정이 있음을 모른 지 오래 되었다. 그들이 와해되어 적도(반란군)에게 투입한 것은 그들의 죄가 아니요 실로 조정의 허물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신란 은 백성들이나 주모자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조정이 잘못한 것이라는 조서를 영조는 배포합니다.

 

 

무신란의 교훈으로는 정치적 갈등을 극복하고 탕평책 의 길을 연 것과, 민생을 안정시키고자 백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것입니다.

 

실제로 영조는 백성을 직접 만나가며 민원의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영조 탕평책 은 쌍거호대라는 인사원칙을 사용하는데요. 한쪽 당의 인물을 등용하면 대등한 직위에 상대 당 인물을 기용하였습니다. 대부분 과격파 급진파는 배제하였고요. 온건파 위주로 등용하였습니다.

 

그래도 노론과 소론은 계속 생산성 없이 싸우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영조가 노론 수장과 소론 수장을 불러 둘이 손잡게 하고 자기도 손잡아 같이 정치를 잘해나가자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황형께(경종) 후사가 있었다면 나는 분수대로 산야에 살아야 했을 것이다. 경종께서 시종 나를 보호했으니 경들은 부디 옛 버릇을 버리고 한마음을 갖도록 하시오.”

 

그때 탕평책을 잘하자는 모임에서 나온 음식이 탕평채인데요.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보이시는 것처럼 색깔별로 붕당정치를 하는 각 파들을 표현하는 음식들을 다 같이 먹는 것이 탕평채입니다. 영조는 탕평채를 같이 먹음으로써 탕평책을 잘해나가자고 신하들과 말씀하셨습니다.

 

위의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지만 실록 같은 공식 기록에는 탕평채를 같이 먹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탕평채는 19세기에 조재남이라는 분이 집필한 송남잡지란 곳에서 처음으로 명칭이 나타납니다.

 

이상 탕평책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정치가 권력 싸움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가면 국민들이 잘 사는 방향으로 정치가 이뤄져야겠지요. 정치인들은 그렇다 치고라도, 국민들은 국민들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그런 정치인을 뽑고 지지해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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