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에 대해 알아봅시다

개국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개국은 나라를 새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개국을 한 왕에게는 태조라는 묘호를 올려주는데요. 묘호는 왕이 죽은 후 그 왕에게 붙이는 이름입니다. 한민족 역사상 묘호가 태조인 왕은 왕건과 이성계 두 분이 계십니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개국했고,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했습니다.

다음은 신라말기 상황을 말해주는 기록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13년 “봄에 백성들이 굶주려, 자손을 팔아 생활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음은 고려말기 상황을 말해주는 기록입니다. 고려사 우왕 9년 “전쟁이 쉬지 않고 계속되며, 홍수와 가뭄이 서로 잇달았으므로... 들판에는 굶어 죽은 시체들이 있습니다.”

 

위의 두 기록은 500년을 사이에 둔 신라말과 고려말 기록인데 같은 내용으로 보이실 것입니다. 이렇게 개국하기 전의 국가 말기는 국민들이 굉장히 살기 어려운 시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개국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들이 왕건과 이성계입니다.

 

왕건은 고려를 개국하고 후삼국을 936년에 통일하였으며, 이성계는 민심을 얻어 신하들의 추대로 1392년에 조선을 개국하였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을 알아보겠습니다.

 

이성계와 왕건은 둘 다 은수저 정도 되는 집안이었습니다. 당시 금수저는 신라때 진골귀족 출신들이고, 고려말에는 권문세족 같은 집권층이라 굳이 개국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냥 하던대로 살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은수저들은 국가적으로 인싸는 아니기 때문에 개국할 정도로 변화를 꿈꿀 수 있고, 재력도 바쳐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건은 상관이었던 궁예가 사비로 배 100척을 만들라고 해서 진짜로 만들정도로 재력이 많았습니다. 그 배 중 10척은 안에서 말을 타고 다녀도 될정도로 컸다고 합니다. 왕건 집안은 호족으로 개성에서 대대로 해상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았습니다.

 

이성계의 고조부는 원나라에 귀부하여 원나라로부터 관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동북면 토호로 성장합니다. 그러다 원나라가 망하는데요. 그 때즘에 다시 이성계 아버지가 고려로 귀부 하여 고려로부터 관직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성계 집안은 대대로 원나라와 고려 두 군데 다에서 관직을 했던 집안입니다. 이성계가 사병을 데리고 나갈 때 2천여명을 데리고 나갈 정도로 집안에 부가 있었습니다.

 

왕건과 이성계는 또 둘다 지방 출신입니다. 신라 때는 수도가 경주였는데, 왕건은 개성 출신입니다. 그래서 수도에서 상당히 멀리 있으면서 국경과는 가까워 중국 정세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고려 수도는 개성이었는데, 이성계는 화주(금야군) 출신입니다. 그래서 이성계 역시 수도에서 멀리서 살면서, 중국의 정세는 잘 파악하고 있었을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왕건과 이성계 각자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왕건은 나주전투에서 이겨 후고구려의 유력자로 등극합니다. 후고구려는 나주를 점령함으로써 후백제의 뒤통수에 있게 되어, 후백제가 중국으로 가거나 일본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후백제는 위와 아래 양 사이드에서 전선이 생겨 부담이 굉장히 크게 생긴 전쟁이 나주 전투에서의 패 입니다. 전라도가 전주 + 나주의 합성어입니다. 이때 전라도에서 나주의 중요성이 생긴 것입니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팔도 중 제일 먼저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왕건의 큰 강점은 적들에게도 굉장히 관대하게 대했다는 것입니다. 후백제와는 그렇게 많이 싸웠는데도, 견훤의 아버지와 견훤이 귀부(자기의 세력을 유지한 채 더 큰 세력에게 복종함)할 때 최대한 편의를 봐주면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견훤뿐만 아니라 신라 왕인 경순왕까지 귀부 하고, 웬만한 호족들은 왕건에게 다 귀부 하여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왕건은 마무리를 결혼으로 했는데요. 지방 유력 호족 집안 딸과 결혼을 하여 전국의 호족들을 하나로 통합시켰습니다. 알려진것만 29번 결혼하였습니다.

 

이성계는 1380년 황산 전투에서 승리하며 유명해지는데요. 황산벌이 아니라 황산입니다. 당시 왜구가 대규모로 고려에 침입해 오는데요. 왜구가 타고 온 배 숫자만 500척입니다. 왜구가 남쪽 삼남지역을 노략질한 것은 물론 수도 개성까지 노렸는데요. 당시 왜구 병력이 고려 병력보다 10배 많았는데도 이성계가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이 전투에서 이김으로써 이성계는 유명해지고, 국민적 영웅이됩니다.

 

고려말에 또 눈여겨봐야 할 사람은 정도전입니다. 이성계는 전투를 잘하는 것은 맞지만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까막눈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요. 그런 머리로 개국까지 할 수는 없지요. 이런 이성계에게 브레인이 되어준 것이 정도전입니다. 흔히 이성계와 정도전이 화학적 결합을 했다고 할 정도로 둘의 결합은 엄청났습니다. 정도전은 신흥 사대부로 고려말에 새롭게 대두되는 계층이었는데요. 신흥 사대부는 학자를 뜻하는 사(士) 자와 관료를 뜻하는 대부(大夫)를 합친 말로 즉 관료이면서 학자인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신흥 사대부는 공부한 것도 많고, 민생도 많이 보고 해서 사회를 개혁하고 싶은 마음은 충만해 있었는데요. 권문세족이 주도권을 잡고 있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도전은 당시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유력자 이고, 중앙과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이성계를 찾아가고 둘이 결합을 한 것입니다.

 

정도전은 당시 개국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정변만 일으켜서 정권만 잡고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근데 일이 돌아가다 보니 개국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왕건과 이성계의 공통점은 개국한 후 세금 관련 개혁을 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한 것입니다. 흔히 쌀밥을 이 밥이 라고도 하는데요. 거기서 이가 이성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성계 + 밥이라고 해서 이 밥이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밥을 먹기 힘들 정도였는데 이성계가 토지개혁과 세금 개혁을 하여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어서 이 씨가 내려준 밥이다란 뜻이 이 밥이 라고 합니다. 왕건도 개국하고 세금을 1/10 정도로 낮게 책정하게 했었습니다.

 

왕건과 결합한 호족 세력보다, 이성계가 결합한 신진사대부 세력 숫자가 더 많습니다. 이것을 통해 역사는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상 개국에 대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웬만하면 밥은 다들 드시니 개국할 정도로 나라가 혼란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면 안 되지요. 계속 발전하여 다른 힘없는 나라들을 도우면서 사는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