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테타 상황에 대해 알아봅시다

미얀마 쿠테타 상황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2015년 처음으로 민주화 정부가 들었던 미얀마에서 또다시 군부 쿠테타가 발생하였습니다.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던 아웅 산 수 치 국가 고문은 구금됐고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위의 사진이 아웅 산 수 치 여사 모습입니다.

2021년 2월 1일 국회 개원을 앞둔 새벽, 미얀마 군부에 의해 아웅 산 수 치 국가 고문과 미얀마 대통령 등 내각 20여 명이 전격 구금되었습니다. 군부는 지난 총선을 문제 삼으며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습니다.

 

 

지난 90년 이후 15년이나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한 아웅 산 수 치 고문은 수도 네피도 관저에 갇혔습니다. 아웅 산 수 치 고문은 지난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해 미얀마에서 첫 문민정부를 세운 뒤 2020년 11월 총선에서도 압승해 재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후 정치인들과 시민운동가, 언론인들이 체포되는 장면이 SNS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이 이번 미얀마 쿠테타를 일으킨 핵심 인물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 사령관입니다.

하루아침에 권력을 손에 쥔 미얀마 군부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 사령관은 다음날 첫 내각회의를 열고 1년 뒤 총선을 다시 치러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SNS 등에 폭동과 불안을 조장하는 시민은 처벌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시민들은 하나둘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냄비나 물통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미얀마 쿠테타에 항의합니다. 냄비나 물통을 두드려 소란하게 하는 것은 불교 국가 미얀마에서 뭔가 나쁜 것을 몰아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휴대폰 불빛으로 이웃들과 저항 의식을 공유하고, 거리에 차량은 경적을 울리며 화답합니다. 일부 대학교 교수들이 수업 거부를 선언했고, 70여 개의 병원 의료진이 진료 거부 선언을 SNS에 하였습니다. 의료진 가슴의 붉은 리본은 지난 2015년 군부가 보건부 장관에 군인을 임명하자 항의 뜻으로 착용한 건데요. 다시 착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총선을 치른다 해도 미얀마 군부는 아웅 산 수 치 고문을 정치권에서 밀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실제 미얀마 정부는 지난 수요일 수치 고문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혐의는 수출 입법 위반입니다.

 

아웅 산 수 치 고문 관저를 수색한 경찰이 작은 무전기 등 여러 무선장비를 발견했는데 이들 장비를 불법으로 수입하고 허가 없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미얀마 현지에서는 군부가 아웅 산 수 치 고문을 축출하기 위해 반역죄로 기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구금됐다가 풀려난 한 원로 국회의원은 국민에게 투쟁을 호소했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번 사태를 미얀마 쿠테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미얀마 쿠테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UN 등 국제사회는 미얀마 쿠테타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접경 국가로 미얀마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속내는 위의 사진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얀마 쿠테타 20일 전인 2021년 1월 12일 민 아웅 최고 사령관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접견하였습니다. 저 사진을 통해 국제사회가 미얀마 쿠테타 관련 공통의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21년 2월 4일 일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10여 분만에 미얀마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미얀마 시민들은 지난 2007년에도 군부에 저항하다 100여 명이 사망하고 실종되기도 했습니다.

 

첫 시위가 일어난 만달레이에는 장갑차 수십여 대가 도착했다고 외신들이 밝혔습니다.

 

현재 수천 명의 미얀마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쿠테타 이후 미얀마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은 재택근무를 시작하였고, 교민 철수를 위한 항공편이 2021년 5월부터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미얀마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면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할 텐데 그러면 군부가 전권을 행사하기 더 쉬워진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미얀마 쿠테타 관련 최대 시위는 최대도시 양곤에서 터질 텐데 행정수도 네피도는 내륙으로 330km나 떨어져 있어서 시위를 통한 반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미얀마는 인터넷도 완전히 차단되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도 할 수 없습니다.

 

해외에 있는 미얀마 국민은 자국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쿠테타 관련 규탄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쿠테타의 원인은 미얀마 군부에서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때문입니다. 아웅 산 수 치 고문이 이끄는 민족민주 동맹(NLD)과 vs 군부가 이끄는 정당이 정치에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아웅 산 수 치 의 정당이 압도적으로 이겼습니다. 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군부는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여당이 이런 군부의 의혹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못 했습니다. 그러면서 쿠테타의 빌미를 준 것입니다.

 

 

미얀마에서의 선거는 한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처럼 선거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일부 군부와 사이가 안 좋은 소수민족이 있는 지역에서는 선거를 못 했는데요. 미얀마 군부는 부정선거라고 의혹만 주장할 뿐 명백한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설마 부정선거였다고 해도 그것은 법적으로 다툴 일이지 쿠테타를 일으킬 일은 아닙니다. 미얀마 쿠테타가 일어난 2021년 2월 1일이 바로 아웅 산 수 치 고문의 문민정부 2기가 출범하는 날이었습니다.

 

2015년에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했었고, 이번 2020년 11월에는 그것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었습니다. 아웅 산 수 치 고문의 정당이 전체 의석의 83.2%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군부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미얀마 쿠테타를 일으킨 게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이번 미얀마 쿠테타를 일으킨 총 책임자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기존에 말한 1년간의 비상 통치 후에도 군정 연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장기집권을 꿈꾸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미얀마 양곤에서는 쿠테타 이후 최대 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쿠테타가 발생하기 전에 미얀마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한국 교민들에게 군부의 움직임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자가 왔었다고 합니다. 한국 외교부에서는 미얀마 쿠테타 관련 정보를 일찍 입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미얀마에서는 군부 통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군부 통치안에서 군사력, 물리력, 경제력을 군부가 다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는 군 통수권자가 대통령이 아니라 군 총사령관입니다. 그리고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자마자 행정, 입법, 사법이 모두 군사령관에게 넘어갑니다.

 

이런 미얀마의 헌법은 군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에 국제사회의 압력이 있고, 미얀마 안에서 국민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군부가 전권을 넘기겠다는 의미로, 군부에게 안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2008년에 통과한 헌법들입니다.

 

미얀마 헌법에는 독소조항이 많습니다. 위의 내용 이외에 전체 상·하원 의석 중 25%는 군부에 할당해야 합니다. 미얀마에서 헌법을 개정하려면 의원 75%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요. 이런 것을 마음대로 못하게 군부가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아웅 산 수 치 여사 배우자가 영국인인데요. 군부가 이것을 이용하여 배우자나 자녀가 외국인이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대통령이 못되고 고문으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1988년 미얀마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군부의 독재를 철폐하자며 대규모 시위를 계속했는데요. 하지만 군부는 시민들에게 잔혹하게 대했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영국에 머물던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조국의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것도 그때였습니다.

 

아웅 산 수 치 여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김구 선생님 정도 되는 보죠케 아웅 산 독립투사의 외동딸입니다.

 

미얀마 국민은 보죠케 아웅 산 장군의 딸인 아웅 산 수 치 여사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하였습니다.

 

아웅 산 수 치 여사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자 1989년 7월 20일부터 군부는 아웅 산 수 치 여사를 가택 연금하였습니다.

 

아웅 산 수 치 여사는 부려 15년 동안이나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지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1991년 아웅 산 수 치 여사는 노벨 평화상을 받는데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아들들이 대신 받았습니다.

 

국제사회에 밀린 미얀마 군부는 2010년 11월 13일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가택연금 조치를 해제하였습니다.

 

2015년 아웅 산 수 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390석을 얻으며 과반을 달성하였습니다. 민주주의민족동맹은 미얀마 역사상 최초의 문민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하지만 군부의 영향력은 걷어내지 못하고 이번에 미얀마 쿠테타가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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