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의 굴욕 에 대해 알아봅시다

삼전도의 굴욕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삼전도의 굴욕은 조선이 청나라와의 전쟁에 패하여 당시 조선왕이던 인조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9번 고개를 숙이는 의식을 한 것입니다. 삼전도라는 곳에서 저 의식을 하여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합니다. 고려는 몽골에 패할 때도 삼전도의 굴욕 같은 의식은 안 했는데요. 청나라에 패하며 삼전도의 굴욕을 겪습니다. 그래도 저렇게 치욕적이긴 하나 조선이 없어지지 않고 유지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위의 사진은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겪을 때 입은 복장입니다. 남색 옷과 갓을 쓴 모습입니다.

삼전도의 굴욕은 인조 15년 1637년 1월 30일에 했습니다. 당시 청나라가 조선에 쳐들어온 상황인데요. 병자호란이라고 합니다. 청나라가 쳐들어온 인원은 5만 ~ 10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조는 청나라가 쳐들어와 강화도로 피난 가려고 했는데요. 청나라는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 갈 거 알고 선발대를 먼저 보내 강화도로 가는 길을 다 막았습니다. 그래서 인조는 얼떨결에 남한산성으로 들어갑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파천한 지 48일째 되는 날 죄인의 신분으로 홍타이지 앞에 섭니다.

 

 

인조는 세 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홍타이지에게 올렸습니다. 인조가 절을 할 때 머리를 세계 내려쳐 피가 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그 정도로 세게 부딪히지는 않고 그냥 보통의 절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삼전도의 굴욕을 할 때 인조는 패전국의 국왕이라서 홍타이지에게 올 때 왕 옷인 곤룡포를 못 입게 하고, 군복의 일종인 남색 융의를 입고 오게 하였습니다. 또 인조는 남한산성 정문으로 못 나오고 서문을 통해서 나왔습니다. 호의 인원도 없었고요. 최소한의 수행원인 시종 50여 명과 함께 홍타이지에게 갔습니다.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는 인조에게 패전국으로서의 사과를 받기 위해 조선에 직접 온 상황이었습니다.

 

삼배구고두례는 한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세 차례 반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갔을 때 남한산성에는 40일 정도의 군량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버티지만 결국 항복 협상을 청나라와 하는데요. 청나라에서 협상 실무자는 용골대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용골대는 선심을 베풀 듯이 삼배구고두례 이외의 것은 면제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원래는 인조가 몸을 결박하고, 구슬을 물고, 관을 스스로 끌고 나오는 것까지 해야 했습니다. 함벽여츤이라는 중국에 있는 패자의 항복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항은 생략해주고 삼배구고두례만 한 것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검은색 옷 입으신 분이 재현한 것인데요. 저렇게 몸을 묶고, 구슬을 물고, 관을 끌고 가는 것이 함벽여츤입니다.

 

인조의 조선은 청나라를 무시하고, 명나라와의 의리만 중요시하면서 정작 청나라와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 우를 범했습니다. 청나라가 그렇게 커지고 청나라와 같이 갈 거 아니면 전쟁 준비를 해야 했는데요. 그냥 말로 청나라 무시하면서 정작 중요한 대비는 안 한 것입니다. 이런 행동들 때문에 결국 인조가 사로잡히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상 삼전도의 굴욕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외세에 맞서는 국력은 스스로 만들어내야지요. 웬만한 일에는 UN이 잘 개입 안 하니 다른 나라들만 믿지 말고, 우리나라의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힘을 가져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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