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 에 대해 알아봅시다

조선 통신사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조선 통신사는 대규모 외교 사절단입니다. 조선 국왕의 국서를 일본 쇼군(막부의 수장)에게 전달하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가면 일본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구경했는데요. 그런 이유는 조선 통신사에는 재주를 부리는 사람도 있어서 말 위에서의 묘기를 보여주며 재주도 부렸고요. 조선 사람이 적어준 한문 글자(시문)가 일본 백성들에게는 부적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사신들이 적어준 한문을 가지려고 하는 등의 이유로 조선 통신사에 일본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습니다.

 

 

위의 빨간색이 조선 통신사의 이동 경로입니다. 에도가 현재 도쿄입니다.

아래는 관련 기록입니다. 해유록 1719년 9월 27일

“구경하는 남녀가 거리를 메웠는데 (중략) 여러 사람의 눈이 빽빽하여 한 치의 빈틈도 없고”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는 통할 통, 믿을 신자를 사용하는데요. 신의를 통하는 사신이란 뜻입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가 아니라 비등한 힘의 나라끼리 교류하는 인원들이라고 보시면 되십니다.

 

임진왜란 후에 조선 통신사는 12번 파견을 나갑니다. 그중 12번째는 대마도까지만 갔다가 돌아오고요. 11번째까지는 도쿄까지 가서 쇼군을 만납니다. 조선 통신사는 보통 새로운 쇼군이 올라서면 축하한다는 의미로 파견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백성 입장에서는 살아생전에 조선 통신사를 볼 수 있는 것이 흔한 것은 아닙니다.

 

조선 통신사는 규모가 보통 300명 ~ 500명 정도이고요. 왕복 거리만 4,000km(서울~부산 400km) 정도 됩니다. 특히 배로 많이 가기 때문에 위험한 길입니다.

 

 

위의 그림은 우키요에란 것인데요. 일본 에도시대의 풍속화입니다. 저 그림의 배경이 조선 통신사를 묘사한 것입니다. 빨간색 원이 말 위에 올라가 묘기를 보여주는 조선 사람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위의 그림은 일본사람이 조선 통신사 사람에게 한문 글씨(시문)를 써달라고 부탁하고 글을 쓰는 모습입니다.

 

조선인이 쓴 글씨는 일본에서 부적의 의미뿐만 아니라 돈 주고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조선 통신사 파견 목적은 아래입니다.

1. 조선의 선진 문화 전파

2. 국방의 안전 도모

당시 조선 북쪽으로 여진족이 후금을 만들고 청으로 발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북쪽이 불안불안 했는데요. 이런 이유로 조선의 남쪽은 안전화 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겪어서 일본이 철천지원수지만 북쪽이 불안하여 남쪽을 안전하게 하려고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였습니다.

 

조선 통신사는 배로 많이 가기 때문에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관리가 조선 통신사로 선발되면 먼저 배가 있는 곳으로 가서 배가 안전하게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뱃머리에 도깨비를 그려 그 힘으로라도 안전하길 바랐습니다.

 

조선 통신사가 본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를 쌓았다는 것을 볼 수 있고요. 기술 발달한 모습도 보았습니다. 일본은 당시 유럽하고 무역해서 부와 기술 등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그런 일본의 선진화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조선 통신사 11번째 사신인 조엄이 겨우 일본에서 고구마를 수입하고(1764년 영조 40년), 일본의 선진문물에 대해서 기록하였습니다.

 

1413년 (태종 13년)에 조선 통신사가 처음 파견되고요. 임진왜란 후 1607년(선조 40년)에 파견이 재개됩니다. 임진왜란 일어난 후에도 파견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북쪽이 불안하여 남쪽이라도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파견한 것입니다.

 

일본이 조선 통신사를 반긴 이유는 조선 통신사를 일본 지방 영주들이 모셔야 하니까 많은 재정을 소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쇼균입장에서 지방 세력의 힘 약화를 위해 조선 통신사가 필요했습니다. 또 국가적으로 저런 인원들이 파견되니까 쇼군으로서의 정당성도 강화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조선 통신사를 반겼습니다.

 

임진왜란 후의 초기 조선 통신사는 임진왜란 포로들(조선인)을 데려오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19세기에는 쿠릴열도 지역으로 러시아의 남진과 영국과 프랑스 등이 배로 일본 근처를 어슬렁거렸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그런 것들을 견제하기 바빠 조선 통신사를 등한시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1811년을(순조 11년) 마지막으로 조선 통신사를 파견 안 했습니다.

 

이상 조선 통신사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조선이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좋은 것을 못 알아보고 배울 생각을 잘 못 한 사항이 매우 아쉽습니다. 저도 일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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