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 신정왕후 부부의 이야기

효명세자 신정왕후 부부의 이야기를

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아들로 안동김씨 세력이

득세하던 19세기라 왕의 권력이

약하고 관료제가 붕괴되는 등 조선전체가

후퇴의 길로 가는 시기의 인물입니다.

그 당시 자연재해도 상당히 많이 기근이 발생

하는 등 상황이 많이 안 좋았는데요

조선을 바로잡기 위해 효명세자와 신정왕후

부부가 어떻게 했는지 보는 자리가 되겠습니다.

 


일단 당시의 왕가의 가계도를 보겠습니다.

위에 보이시는 건데요 순조의 아들이 효명세자이고

효명세자가 피를 토하며 단명을 하여 그의

아들인 헌종이 집권하는데요. 당시 순조의 아내인

순원왕후가 있어 수렴첨정을 하게 됩니다.

헌종이 단명하여 철종이 순원왕후 양아들로 들어가

순원왕후가 또 수렴청정을 하는데요.

후에 순원왕후가 죽고 철종이 단명하여 고종이

신정왕후 양아들로 들어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신정왕후가 팀을 이뤄 안동김씨

세력을 누르는 개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조선 개혁의 시작인 효명세자 이야기

를 하겠습니다.

 


효명세자는 어렸을 때부터 정식으로 세자 교육을

받는 세자였습니다.

총명함도 있어 19살부터 수렴 첨정하여 순조와

함께 국무를 보는데요. 22살 무렵엔 실권을 장악

했을 정도로 어린데 정치에도 능란했습니다.

 


효명세자와 11, 신정왕후 12살에 가례를 올리는데요.

당시는 지금보다 오래 못살고 왕권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빨리 결혼했습니다.

 


당시는 안동김씨가 권력을 잡고 있었고 2순위로

반남박씨가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요.

풍양 조 씨 집안이 반남박씨를 제거하고 권력 서열

2위로 올라가던 시기 이었습니다.

신정왕후가 풍양 조 씨인데 이런 상황과 맞물려서

효명세자의 아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19세기는 세계적인 이상기온이 있던 상황이라

기근이 많이 발생하여 민란들이 많이 일어나던 시대

이었습니다. 그래서 재연재해도 왕과 연결되어있다고

믿던 시기라 왕의 힘이 더 약하게 되었습니다.

 


1827년부터 효명세자는 순조를 대신해 대리첨정을

하며 국정을 돌보를 하게 됩니다.

 


효명세자는 춤에도 관심이 많아서 직접 안무를

만들기도 하고 노래가사도 쓰고 했습니다.

정재라고 궁중에서 하던 무용이 있습니다. 현재

53가지가 남아 있는데 그중 26가지는 효명세자

작품이 이라고 합니다. 보통사람은 효명세자를

잘 몰라도 한국무용 쪽에서는 유명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정재같이 궁에서만 하는 무용이나 음악을

이용해 왕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셨습니다.

 


효명세자는 국정을 돌보며 안동김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일단 재정을 장악합니다. 호조나

선혜청의 요직을 장악하고요

 


사헌부와 사간원에 안동김씨와 반대되는 세력인

남인, 북인, 소론계열분들을 배치하여

안동김씨의 비리들을 계속 말하게 합니다.

순조 역시 인사권까지 효명세자에게 주는 등

전적으로 많은 권한을 넘깁니다.

 


그 외에의 개혁 조치로

과거제 폐단을 시정하려고 하고 왕실 권위 회복을

위해 경복궁 중건 계획도 가집니다.

 


그렇게 효명세자는 개혁정치를 하게 되는데요

1830년 집권한지 33개월 만에 피를 토하고

며칠 앓다 돌아가시게 됩니다.

왜 그렇게 돌아가셨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

지만 누가 피를 토하게 했는지 느낌이 다들

오지 않나요.

효명세자가 죽은 후 안동김씨 세력에 의해

효명세자 측근들은 다 제거 되었답니다.

 


그 후 효명세자의 아내인 신정왕후는 혼자 살고

위에서 말한 대로 왕들이 바뀌게 됩니다.

1863년 철종이 죽고

고종이 신정왕후의 양아들로 되면서 신정왕후는 권력을

잡게 됩니다.

 


신정왕후는 권력을 잡고 남편이었던 효명세자가

하려 했던 개혁정책인 과거제 정비와 경복궁 중건,

서얼의 허통(첩 자식 관직 허용)을 실행하게 됩니다.

모두 효명세자가 추진하려 했던 정책들입니다.

앞에 나서서 하지는 않고요 흥선대원군과 팀을

이뤄 흥선대원군이 앞에서 나서고 신정왕후는

뒤에서 일을 진행합니다.

 


존호라고 왕이나 왕비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올리는 이름이 있는 데여 조선왕후중 신정왕후

존호가 제일 길다고 합니다.

 


신정왕후는 사후에 효명세자 무덤과

합장하여 같이 묻히게 됩니다.

 

신정왕후님 뭔가 감동적이네요

남편의 죽음을 피로 복수 하지 않고 정책으로

한을 푸는 모습 짠합니다.

이상 19세기 안동김씨 세력에 대항했던

효명세자 신정왕후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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