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원인과 결과 에 대해 알아봅시다

러일전쟁 원인과 결과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04년 2월 8일 오후 러일전쟁이 시작합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는 만주와 한반도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일본도 한반도를 발판으로 대륙에 진입하려고 했는데요. 이런 러시아와 일본의 주요 관심 대상인 만주와 한반도의 이권을 두고 러일이 전쟁한 것이 러일전쟁 원인입니다. 결과는 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승리입니다.

 

 

러일전쟁이 발발 하기 전에 이미 세계는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할 것이란 것을 예측했습니다. 그 정도로 만주와 한반도에서 양국의 경쟁은 치열했습니다. 위의 그림은 1904년 4월 3월 프랑스 신문에 실린 러일전쟁의 풍자화입니다.

 

 

저기서 가운데에 덩치 크고 뒷짐 진 사람이 러시아이고, 그 앞에 작은 사람이 일본입니다. 그리고 링 뒤쪽에 영국, 미국, 독일 등이 관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맨 뒤쪽으로 입장권이 없어 담 너머로 구경하고 있는 조그만 사람이 청나라입니다. 링 위에서 두 선수가 밟고 있는 지도는 한반도와 만주지도입니다.

 

저 정도로 세계는 러일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러시아가 이길 것으로 예상을 했습니다. 유럽 도박판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지에 돈을 건 게 아니라, 러시아가 얼마나 빨리 이길지에 돈을 걸었을 정도로 당연히 러시아가 이길 줄 알았습니다.

 

당시 러시아 군 전력은 육군을 100만 이상 가지고 있었고, 해군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알아주는 발틱함대 등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육군이 20만 명 미만이고, 해군력도 러시아군의 2/3 수준이었습니다.

 

근데 러일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의 뒤에는 프랑스, 독일이 함께 했고요. 일본 뒤에서는 미국과 영국이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전쟁이었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러시아 서쪽으로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므로 독일은 러시아가 동쪽으로 관심을 두길 바랐습니다.

프랑스는 원래 러시아와 우호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편이었고요. 독일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서쪽으로 독일과의 국경이 있는데요. 그래서 독일은 러시아가 서쪽보다는 동쪽에 관심을 두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동쪽인 만주와 한반도 관련 일을 진행하게 지원을 했던 것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은 러시아가 만주와 한반도를 모두 점령하는 남하 정책을 안 좋게 바라봤습니다. 러시아가 너무 힘이 세질까 우려한 것인데요. 그래서 일본을 지원하였습니다. 미국은 원래 일본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일본이 외교홍보를 많이 하였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 대학교 출신인데요. 같은 일본의 하버드 출신을 보내어 외교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미국으로부터 러일전쟁 관련 지원을 받았습니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할 때 그냥 전쟁만 한 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에 신경을 쓴 이유는 삼국간섭으로 청일전쟁으로부터 얻은 요동반도를 강대국에 뺏겼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 승리하여 요동반도를 얻는데요.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입김을 내어 요동반도를 그냥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일본군 40여 명이 자살하기도 했다는데요. 이런 이유로 전쟁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외교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미국과 영국을 자기편으로 만든 것입니다.

 

일본은 전쟁을 제대로 하려면 돈도 많이 필요합니다. 특히 상대는 당시 세계 최강국 중 하나인 러시아라 돈이 정말 많이 필요했는데요.

 

일본은 1895년에 10년 예산 편성을 했는데요. 육군은 7개 사단에서 13개 사단으로 늘리고, 해군은 강철 전투함 6척, 순양함 6척을 더 만드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66 계획이라고 합니다. 근데 저러려면 돈이 부족했습니다. 당시 돈으로 8억엔 정도가 필요했는데요. 이게 청일전쟁 전의 일본 1년 예산의 9배 수준입니다. 그래서 외국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야 하는데요. 위에서 본 것처럼 대부분 나라는 러시아가 이길 것으로 예상한 상황입니다. 전쟁에서 지는 나라에 자금을 지원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지요. 그런 상황인데요.

 

 

위의 분은 야곱 시프(Jacob Schiff)라는 미국 유대인 은행가입니다. 저분이 4차례에 걸쳐 위의 자금을 일본에 조달해 줍니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에서 유대인 박해가 제일 심한 나라였는데요. 그래서 러시아와 전쟁을 하는 일본에 유대인 은행가가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승리는 군사력보다도 시프(Schiff)의 원조였다라고 현재 말하고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야지요. 못되게 행동하면 어떻게 뒤통수 맞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위의 해전들이 러일전쟁 당시 일어난 해전입니다. 모두 일본이 승리하는데요. 청일전쟁처럼 완벽한 승리는 아니고, 겨우겨우 이기는 수준입니다.

 

 

위의 봉천이라는 곳에서도 러일전쟁 육지전이 일어났는데요. 저기서도 일본이 겨우 승리합니다. 봉천전투에 투입한 인원은 러시아군 32만 vs 일본군 25만이었습니다. 결과는 러시아군 9만 명 사상(포로 포함), 일본군 7만 명 사상으로 일본군 승리입니다. 봉천에 일본군이 입성한 날이 1905년 3월 10일인데요.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전까지 그날이 일본 육군 기념일로 정해졌었습니다.

 

 

러시아가 러일전쟁에 좀 밀리자 러시아는 당시 세계 최강 해군인 발틱함대를 한반도로 보냅니다. 그래서 위의 민트색 경로로 한반도에 발틱함대가 와야 하는데요. 당시 수에즈운하를 영국이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발틱함대는 수에즈운하를 통과 못 하게 해서 빨간색 경로로 돌아서 한반도에 왔습니다. 지구를 거의 1바퀴 돈 건데요. 저래서 발틱함대는 한반도에 왔을 때 굉장히 지친 상태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일본과의 전투에 패배합니다.

 

러일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일본이 치른 전쟁이지만 미국과 영국의 빽 영향이 컸던 전쟁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일본 편에 비하여 러시아 편인 프랑스와 독일은 러일전쟁에 신경을 덜 썼습니다.

 

 

위의 사진은 1905년 9월 5일 러시아 일본이 러일전쟁을 종결하여 회담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오른쪽 두 명 동양인이 일본 측 대표이고, 왼쪽 두 명 서양인이 러시아 대표입니다. 가운데 분은 당시 미국 대통령 시이도어 루스벨트인데요. 중재를 위해 저기에 참석했습니다. 포츠머스에서 협약을 맺어서 포츠머스 강화조약이라고 합니다. 포츠머스는 미국 지역입니다.

 

당시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이기긴 했는데요. 근소하게 이긴 것이라 전쟁에선 이겨도 협상까지 잘할 힘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쟁 중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청일전쟁 때 일본이 사용한 금액은 2억 엔입니다. 10년 후인 러일전쟁 때 일본이 사용한 금액은 18억 엔입니다. 일본으로서도 상당히 무리하며 전쟁을 한 것입니다. 일본의 사상률은 30% 정도입니다.

 

아래는 포츠머스 강화조약 중 일부입니다.

러시아 제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우월한 이익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일본제국 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도, 보호, 감독에 조처를 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한국을 일본의 속국으로 인정하는 조약이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저(2차 세계대전 때 루스벨트 대통령하고 다른 사람입니다) 중재를 하면서 노벨 평화상도 받습니다. 세계의 질서는 강대국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이란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상 러일전쟁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또다시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평상시에 국력을 키워놔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는 좋으니, 청렴하기만 하면 우리나라는 또다시 노예 나라가 될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청렴하게 삽시다. 행복하세요!!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