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전투 영광의 순간을 알아봅시다

청산리 전투 영광의 순간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청산리 전투는 청산리 지역에서 독립군과 일본군이 치른 전투입니다. 1920년 10월 21일~26일 5박 6일 동안 10차례 전투를 벌이는데요. 거기서 독립군이 모두 대승을 했습니다. 청산리 전투는 김좌진 장군과 함께 홍범도 장군도 참전한 전투입니다. 청산리 전투는 무장독립운동 사상 최대 규모의 승리를 한 전투입니다.

 

 

위의 빨간색 점이 청산리 지역입니다.

 

 

위의 지도가 청산리 지역을 확대해서 본 모습인데요. 저 전투들이 모두 청산리 전투에 속한 전투입니다. 저 전투들을 모두 독립군이 승리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하루에 사격 훈련 한 번만 해도 빡세고 하루가 다 가는데요. 저 때는 하루에 2번 정도 저런 전투들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한 부대가 아니라 여러 부대가 전투를 했습니다.

 

몇 년 전에 봉오동 전투가 영화로도 나왔는데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는 이어진 관계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일어났고요.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같고 이어져 있습니다.

 

아래는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가 일어난 배경입니다.

 

1919년 후반 독립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독립군이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 국내에 들어와 일본 관공서나 군대를 습격하고 빠지는 게릴라 전투를 계속 벌였습니다.

 

1920년 1월부터 3월까지 독립군이 수행한 국내 진공 작전은 총 24회라고 기록에 있습니다. 굉장히 자주 들어와서 치고 빠지는 전술이었는데요. 그래서 일본이 약도 오르고,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합니다.

 

이런 이유로 1920년 6월 6일 일본은 월강 추격대라고 해서 중국의 북간도 지역에 있는 한국 독립군을 추격해서 토벌하는 군대를 조직합니다.

 

 

위의 빨간색 원이 봉오동 지역입니다.

봉오동은 말만 동이고 실제론 굉장히 큰 지역입니다. 봉오동은 입구에서부터 독립군 연변 장이 있던 곳까지 직선거리가 약 10km가 될 정도로 넓은 지역입니다. 저기서 월강 추격대와 홍범도 장군의 독립군이 전투를 벌여 독립군이 승리한 전투가 바로 봉오동 전투입니다.

 

봉오동 전투의 승리 비결은 전략을 잘 짰다는 것입니다. 월강 추격대의 유인부대가 월강 추격대를 공격하고 도망치며 미리 독립군이 사방에 매복해 있는 장소로 유인해 일본군을 격파한 것입니다. 영화로도 잘 묘사가 되어 있는데요. 영화 보셔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제목은 ‘봉오동 전투’입니다.

 

 

위의 그림 같은데요. 사방에 독립군이 매복한 지역으로 일본군을 유인하여 데려온 후 저기서 집중사격을 하여 일본군을 궤멸시켰습니다.

 

 

일본이 그래서 많이 화나는데요. 일본은 봉오동 전투에서 패한 후 간도 지방 불령선인 초토 계획을 세웁니다. 더 심각하기 전에 먼저 중국에 진입하여 독립군을 초토화한다는 내용입니다. 기간은 단 두 달입니다. 한 달 동안은 독립군을 섬멸하고 다음 한 달 동안은 민간인을 섬멸한다는 것입니다.

 

동원된 일본군은 2만 명 이상인데요. 대규모 군대가 중국 영토에 들어가야 합니다. 당시 중국이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 해도 저 대규모 군대가 중국에 진입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는데요.

 

일본은 중국의 마적인 장강호라는 사람을 돈으로 매수합니다. 그래서 장강호를 중심으로 한 마적단이 훈춘에 있는 일본 영사관을 불태웁니다. 이것을 빌미로 2만여 명이 넘는 일본군이 대규모로 중국에 진입합니다. 이 훈춘에 있는 일본 영사관을 불태운 사건이 훈춘사건입니다. 1920년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출동하기 전에 중국에 조선 독립군 좀 정리하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중국이 독립군에게 북간도 지역에서 떠나라고 얘기했는데요. 그래서 독립군이 북간도 지역에서 떠납니다. 백두산 지역으로 가고 있었는데요. 그렇게 떠나다가 2만여 명이 넘는 일본군과 맞닥뜨린 지역이 바로 청산리입니다.

 

청산리 전투의 하나인 백운평 전투에서는 조선 민간인들이 일본군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독립군이 매복해 있는 지역으로 일본군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독립군이 매복해 있다가 격파를 합니다.

 

홍범도 장군은 청산리 전투의 하나인 완루구 전투에서 일본군과 결전을 벌여 승리합니다. 완루구 전투에서는 안개가 굉장히 짙게 깔렸는데요. 그래서 일본군 다른 부대끼리 서로 총질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군 사상자가 4백여 명 나왔습니다.

 

무기는 당연히 일본군이 더 좋습니다. 인원도 일본군이 더 많습니다. 독립군이 이길 수 있던 이유는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며 전술을 잘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지형지물은 그때 독립군도 처음 가는 지역이라 잘 몰랐는데요. 지역에 사는 조선 민간인들이 조언을 많이 해줬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상 청산리 전투 영광의 순간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제가 아무리 고생을 한다. 해봐야 저 때 독립군들이 힘들던 것의 반이나 하겠습니까 오늘도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조상님들께 감사하고 힘들다는 핑계 대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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