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한강에서 일어난 일들을 봅시다

삼국시대 한강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한강은 정말 중요한 곳이죠.

강이 바다와 연결되어 해로를 이용해 전국으로

연결 될 수 있으며 중국이나 외국과도

연결 될 수 있는 곳입니다.

또 물과 평야가 많아 농사짓기도 좋고

주변에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지키기도

유리한 곳입니다.

이런 한반도 최고의 지역인 한강을 가지기

위해 삼국시대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보겠습니다.

 


한강의 이름은 중국식 이름 한수(漢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크다) 가람()

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고구려에서는 한강을 아리수라고 불렀습니다.

아리(=)+()=큰 강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모래가 많아서 사평도’, ‘사리진

이라고 불렀습니다.

 


삼국시대 한강의 역사는 온조가 고구려부터

내려와 한강유역 풍납토성을 도읍으로 정한 것부터

시작 합니다. 위에 보이시는 곳이 풍납토성

위치입니다. 저 지역이 백제 수도로써

500년간 이어집니다.



그 이전에도 한강에서 살던 사람들은 있었는데요.

나라를 세울 힘은 없었습니다.

그런 공백 지를 온조가 내려와 갖게 됩니다.

 


서기 392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남진을 합니다.

한강유역을 점령하려고 전쟁을 하는 거지요

아시다시피 광개토대왕은 남쪽보다는 북쪽으로

엄청난 영토를 점령한 왕입니다.

본격적으로 요동정벌을 하기 선행단계로 뒤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백제를 공략해 한강유역을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396년 고구려 군이 한강을 건너자 백제는 항복을

합니다. 그리고 한강은 완전히 고구려의 땅이

됩니다.

백제를 공격한 것은 뒤를 안정화 시키려는

목적도 있지만 고국원왕(백제군에 죽음)

복수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427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긴 후 남진 정책을 펴 한강 남쪽의 땅들도

점령 합니다.

당시 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편 이유는 중국에 북위라

는 초강대국이 있어 더 이상 북쪽으로는 영토 확장

이 어려워 남쪽으로 눈길을 돌린 것입니다.

한강 유역의 평야들도 마음에 들어 했고요.

 


551년 백제와 신라가 연합해 한강유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원래 약속은 백제와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

하면 백제는 한강 남쪽, 신라는 한강 북쪽을

차지하기로 했는데요.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이남까지

뺏습니다. 이 전쟁으로 백제의 성왕은 전사하고요

신라가 한강이남까지 욕심을 부린 이유는 중국과

원활하게 접촉을 할 수 있는 통로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신라가 중국과 교류를 하려면 고구려의

허락을 받고 고구려가 안내하는 육로를 따라 중국과

교류를 할 수 있었는데요.

한강 이남을 갖게 되면 독자적으로 중국과 교류

할 수 있었습니다.

백제는 이 일후 신라에 이를 갈았습니다.

 


그 후 590년에 고구려는 온달장군을 앞세워

한강지역을 수복하려고 하는데요.

실패합니다.

온달장군 역시 아차 산에 전사하게 됩니다.

 

신라는 당시 한강유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한강지역을 점령하면 성을 쌓고 주민들을 이주

시키는 등

최선을 다해서 지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삼국시대 내내 끝까지 한강지역을

지키게 됩니다.

 

아래는 삼국시대에 한강지역에 대한 각 나라의 의미입니다.

백제: 건국의 터전이자 도읍지입니다.

고구려: 요충지이지만 적극적인 경영 의지는 낮은 지역입니다.

신라: 반드시 점령해야 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지역입니다.

 

이상 삼국시대 한강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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