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죽음 당시의 상황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45년 4월 16일 소련군은 베를린 총공세를 시작합니다. 당시 동원된 소련군 병력은 250만 명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전체 병력 숫자가 2020년 기준으로 55만 정도 됩니다. 이게 독일 주력부대가 이미 괴멸된 상태에서 소련군 숫자입니다.
위의 사진은 1945년 4월 30일 소련군이 독일 제국의회 의사당을 점령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물론 실제 저렇지는 않았고 재현한 것입니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이 승리하는 것이 게임 체인저가 되어 소련군이 승승장구해 베를린 총공세까지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탈린 그라드 전투와 베를린 점령 사이에도 2번의 큰 전투가 있었는데 모두 소련군이 이겼습니다.
위의 초상화가 표트르 바그라티온입니다.
1944년 6월부터 소련군은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했습니다. 그 작전명은 바그라티온인데요. 표트르 바그라티온(1765~1812)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물리친 제정 러시아 장군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따서 작전명을 정했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은 폴란드와 벨라루스에 포진해 있는 독일 중앙집단군을 섬멸하기 위한 소련군의 대공세인데요. 1944년 6월 22일 ~ 8월 19일까지 진행하였습니다. 저 6월 22일이 3년 전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한 그 날짜입니다.
병력은 250만, 기갑차량 5,800대, 항공기 7,800대가 동원되었습니다.
독일의 패망이 시작된 사건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아니라 바로 이 바그라티온 작전이라고 보는 역사학자도 있습니다.
1945년 4월 16일 소련군은 독일군의 베를린 방어선을 뚫습니다.
궁지에 몰린 히틀러와 나치는 어린아이들을 소년병으로 만들어 참전시킵니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전쟁 고아였는데요. 그들의 부모를 죽인 사람들이 바로 소련군이라고 세뇌하며 복수하라고 시켰습니다.
베를린에서만 소년병 4,000여 명이 동원되었습니다. 아래는 소년병들이 군인으로 입대할 때 한 서약서 내용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구세주 아돌프 히틀러에게 나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겠다.”
히틀러는 소년병들에게는 소련군과 싸우게 명령하고, 본인은 벙커에 들어가 초코케이크나 먹었답니다. 단것을 원래 좋아했답니다.
히틀러는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가 아니라 투표해서 뽑은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독일 국민의 지지율 같은 것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요. 그래서 전시에도 독일 국민의 생활 수준 유지에 힘썼습니다.
보통 전쟁이 나면 웬만한 공장들은 군수공장 등으로 다 바꾸는데요. 히틀러는 화장품이나 파마약 같은 민간 제품을 만드는데도 그대로 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 원인이 너무 낮아진 국민의 생활 수준 때문에 국민의 불만이 초래한 것이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치주의의 핵심은 인종주의입니다. 인종 사이에 유전적 우열이 있다며 지배 – 피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인데요.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킬 때도 이 논리대로 쳐들어가고, 질 때도 이 논리대로 독일이 패배한 것이니 독일인은 다 죽어도 된다는 뉘앙스의 주장을 합니다.
이때 독일의 장군들과도 사이가 안 좋았는데요. 히틀러는 흙수저 출신이지만, 독일 장군들은 다 금수저 출신들입니다. 그래서 원래 서로 안 좋게 보고 있었는데 전쟁에서 승리가 이어질 때는 이게 표면으로 잘 안 나타났지만, 전쟁에서 몰리자 많이 드러나 굉장히 사이가 안 좋게 됩니다.
독일이 몰리자, 나치는 그라이프코만도(Greifkommando)라는 탈영병 전담 조직을 만들어 도망가는 군인이나 민간인들을 모두 죽입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연인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을 하고요. 바로 동반 자살을 합니다.
히틀러 죽음 하루 뒤인 1945년 5월 1일 괴벨스 부부 역시 6명의 자녀를 모두 살해한 후 자살합니다.
위의 사진이 괴벨스 부부와 6자녀 모습입니다. 선전용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괴벨스 부인도 열혈 나치당원이었는데요. 히틀러가 없는 곳에서 살아서 뭐 하냐면서 다 죽이고 죽었습니다.
히틀러는 나치즘의 부활을 위해 더 비극적이고 낭만적으로 최후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틀러 죽음 직전에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스탈린은 히틀러의 나치즘이 부활하는 것이 제일 두려웠는데요. 그래서 히틀러 시신을 찾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는 히틀러 두개골 일부를 모스크바에 보관했는데 철저히 비밀에 부칩니다. 나치즘이 부활할까봐 두려워서 그랬는데요. 이 정도로 스탈린은 히틀러와 나치즘을 두려워했습니다.
민간인 포함해서 독소전쟁으로 소련인은 2,900만 명 사망하고요. 독일인은 500만 명 사망합니다.
이런 죽음은 과연 무엇을 위한 죽음이었을까요.
이래서 리더를 잘 뽑아야 합니다. 리더를 잘 못 뽑으면 나라 전체가 무덤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상 히틀러 죽음 당시의 상황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전쟁은 지도자들만 좋은 것입니다. 일반 국민은 좋을 게 하나 없는 행동입니다. 방어를 제외한 공격 전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