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과 선화공주의 결혼이야기

서동과 선화공주의 결혼이야기에 관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서동은 후에 백제의 30대 왕인 무왕이 됩니다.

선화공주는 신라 26대왕인 진평왕의 딸입니다.

이 둘이 어떻게 결혼까지 갈 수 있었는지

알아보는 자리가 되겠습니다.

 


서동은 백제 왕족의 핏줄이나 서열 등에서 밀려(서얼 같은)

마를 팔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신라의 공주인 선화공주가 절세미녀라는

소문을 듣고 선화공주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서동요라는 향가를 짓고 신라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서동요를 부르거나 친구에게 알려주라고

얘기합니다.


 

서동요는 향가로 지어져서 현대 말과 다르지만

현대 말로 적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시집 가 두고

맛둥(署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으러 간다네

 

입니다. 좀 순화해서 현대말로 해석하면

선화공주가 남몰래 서방을 얻어 통정을

하고 밤마다 외출을 한다 라는 뜻입니다.

 

위의 노래가 신라에 퍼지자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유배 보냅니다.

선화공주가 유배를 가는 길에 서동이 지키고

있다가 둘은 만나고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래는 삼국유사에 있는 글입니다.

선화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지만

뜻밖에도 믿음직하여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따라오도록 하였고 또 몰래 정도 통하였다.

공주는 그런 뒤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동요의 내용이 진짜 맞았다고 믿었다.‘

서동은 외모도 되고 능력도 있으며 재주도 좋았

다고 합니다.

선화공주는 유배를 갈 때 금덩이를 가지고

갔는데요. 서동에게 그 금덩이를 주자 서동이

금의 가치는 모르고 그런 거 자기 마 캐는 밭에

많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서동이 금을 캐어 진평왕에게 보내 마음을

얻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동은 후에 백제의 왕인 무왕이 되는데요.

재위 42년 동안 신라를 12번 공격합니다.

그래서 많은 승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무왕의 업적은

1. 전쟁승리

2. 유연한 외교 전략

3. 부국강병

입니다.

 


위의 첫 번째 사진은 왕궁리 유적이고 두 번째

사진은 미륵사 사진입니다.

당시 백제는 왕보다 귀족세력의 힘이 강했는데요.

왕권강화와 백제의 부국강병을 위해

수도를 익산(=서동 고향)으로 옮기는 것을

계획하게 됩니다.

익산 천도설의 근거로는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가 있습니다.

 

미륵사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왕이 아내와 함께 길을 가고 있는데

용화산 아래 큰 연못에서 미륵 삼존이 나타나자

무왕(=서동)이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왕의 아내(선화공주)가 그곳에 절을 짓자고 해서

연못을 메우고 지은게 미륵사입니다.

 

이상 서동과 선화공주의 결혼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서동은 나쁜 남자 스타일인데요.

백제와 신라가 원수지간일 때에 서동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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