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치상지 백제 부흥 운동에 대해 알아봅시다

흑치상지 백제 부흥 운동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흑치상지는 백제의 장수로써 백제 멸망 당시

백제의 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흑치상지 장군은 백제의 영웅으로도 불리며

배신자로도 불리는 인물인데요.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흑치상지 장군 초상화입니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아래와 같이 흑치상지 장군을

기록 했습니다.

흑치상지는……. 키가 7척이 넘고 날래고

굳세며 지략이 있었다. “


 

흑치상지 묘지명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흑치상지는 조상은 부여 씨로부터 나왔는데

흑치에 봉해져서 자손들이 이를 씨로 삼았다. “

흑치 땅을 받아서 흑치라는 지역의 명칭에 의해

성을 흑치라고 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흑치란 지역은 필리핀이라는 설도 있고요

충남 예산군일대라고 보는 설도 있습니다.

 

6607월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 수도성인

사비성이 함락됩니다.

이에 백제왕인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피신을 가는데요.

웅진성주 이었던 예식진이 배신하여 의자왕을 끌고 가

당나라에 항복시킵니다.

 

그 후 나당연합군은 백제 백성들을 겁탈하고 노략질하며

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입니다.

구당서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정방이 군대를 풀어 겁락하게 하니

젊고 건강한 자들이 많이 죽임을 당했다. “

 


위에 표시된 위치가 임존성의 위치입니다.

이 상황을 안 흑치상지는 백제 부흥 운동을 하는데요.

장수 10여명과 함께 임존성으로 도망가 거기서 부흥

운동을 합니다.

흑치상지 장군이 임존성에서 백제 부흥 운동을 시작하자

이 소식을 듣고 임존성으로 귀순한 백성들이 10일이 안되어

3만이 넘었다고 합니다.(삼국사기 열전 흑치상지)

 

백제 임존성의 위치는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의

봉수산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나라군은 임존성 공략을 실패하는데요.

 

흑치상지 장군이 백제 부흥 운동을 위해 일어서자

이 성 저 성에서 백제 부흥 운동을 같이 하여

200여 성을 회복하였다고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존성, 두시원악, 정현성, 남장성, 주류성 등이

백제 부흥 운동의 근거지 이었습니다.

이때 흑치상지와 함께 무왕의 조카였던 복신과

승려였던 도침을 중심으로 백제 부흥 운동이

전개 됩니다.

 

6612월 같은 경우는 당군이 주둔중인 사비성을

백제 부흥 군이 포위할 정도로 백제부흥군의 세력이

커집니다.

 

초반에는 백제 부흥군의 세력도 커지고 소정방의

주력부대가 고구려 정벌을 위해 당으로 돌아가

백제 부흥 군이 승기를 잡는 듯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부여풍을 상상해 그린 그림과

백강전투 상황도입니다.

당나라는 의자왕과 태자들을 당나라로 끌고 가면서

백제 부흥 운동의 구심점역할을 할 사람이 없어지는

데요 이때 30년 전 의자왕과의 왕위 쟁탈전에 밀려

왜에 가 있던 백제 왕족 부여풍이 백제로 돌아옵니다.(661)

 

백제 부흥 운동 지도부 간에 분열이 생기는데요.

복신이 도침을 살해해 병권을 장악하고 흑치상지 장군도

살해 하려다가 실패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 후 백강전투를 하는데요.

왜나라가 백제를 돕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견합니다.

왜의 파병 이유는 아래입니다.

1. 선진문물 수용 창구로 백제는 중요합니다.

2. 부여풍등 백제 왕족들의 왜국 내 활동이 많아서 백제와

왜는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3. 백제가 멸망할 경우 왜가 당나라의 침략 위험에 노출됩니다.

 

당 수군은 신라군과 백강하구에서 주류성 협공 작전을

하는데요.

그때 왜 수군(30,000)이 백제군에 합류하기 위해 오다가

당나라 수군과 마주칩니다.

그래서 왜 수군과 당나라 수군은 전투를 하는데요.

당나라 수군이 이겨 왜의 수군들은 도망칩니다.

 

백강전투 후 주류성을 비롯한 다른 백제 부흥 운동을

하는 성들이 당에 점령됩니다.

부여풍은 그래서 고구려로 도망치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임존성 사진입니다.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당 태종이

흑치상지를 회유하는 서신을 보냅니다.

그래서 흑치상지는 백제를 배신하고 당나라로 투항

하게 됩니다.

그 후 당나라 군대의 앞잡이가 되어 임존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게 됩니다.

 

그 후 흑치상지는 웅진도독부의 군장으로 임명되고요

당으로 넘어가 거기서 장수 역할을

하는데요. 당에서 종 1품까지 합니다.

측천무후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백제는 흑치상지가 있는데 왜 망했는지 모르겠다.”

 

흑치상지는 승승장구 하다 60살 정도에

모함으로 반역죄가 씌워져 죽게 됩니다.

 

이상 흑치상지 백제 부흥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역사는 정의로운 판단을 하며 바라봐야 하는데요.

그 기준으로 흑치상지 장군은 달갑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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