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천추태후에 대해 알아봅시다

고려 천추태후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천추태후 하면 이름 때문에 중국 사람인지 아는데요. 그렇지 않고 고려의 왕후입니다. 고려인 천추태후인데요 고려 천추태후는 고려의 5대왕 경종의 아내이고 6대왕 성종의 여동생이며 7대 왕 목종의 어머니이고 8대왕 현종의 이모가 되는 사람입니다. 고려의 4대왕들과 연관이 있는 고려 천추태후는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사람인데 오늘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표지는 2009년에 고려 천추태후를 주제로 만들어진 천추태후라는 제목의 KBS2 드라마입니다. 저 역시 저 드라마할때 이름만 듣고 중국여왕을 주제로 한 드라마인줄 알았습니다. 천추태후는 여동생과 함께 경종의 비가 되었습니다. 고려 천추태후의 여동생은 헌정왕후입니다.

 


980년 천추태후는 왕실에서 유일하게 고려 5대왕 경종의 아들을 출산합니다. 그 아들이 후에 고려 7대왕 목종이 됩니다. 그 후 981년 고려 5대왕 경종은 승하하게 됩니다. 당시 목종은 2살밖에 안 돼 왕이 될 수 없어서 천추태후의 친오빠가 왕이 되는데 그가 고려 6대왕 성종입니다. 고려 천추태후는 18살에 과부가 된 것입니다.

 

고려 6대왕 성종은 고려를 유교적인 정신에 입각한 국가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유교정신 중에서도 신하는 왕을 따라야 한다는 정신이 중요한 부분이라서 고려를 유교적인 국가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당시는 호족세력이 득세하던 시기라 왕에게는 신하들의 충이 필요했던 시기입니다.

 

고려 천추태후를 헌애왕후 황보 씨라고 하는데요. 황보 씨는 할머니의 성을 딴것이고 천추태후가 천추전이라는 궁에 살아서 천추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태후는 조선시대의 대비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위의 지도는 서흥군 위치입니다.

고려 천추태후는 과부로 있으면서 김치양과 바람이 납니다. 김치양이 승려로 천추 궁에 드나들 때 바람이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치양은 동주 사람으로 현재의 황해도 서흥군 사람입니다. 동주 사람이라면 천추태후의 외족이기도 한 것입니다.

 

고려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바람이 났을 때 천추태후의 오빠인 성종에게 이 사실이 발각됩니다. 고려 성종은 가뜩이나 고려를 유교국가로 만들려는 사람인데 과부의 바람은 용서가 안 돼는 사항입니다. 더군다나 천추태후는 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경종의 아들까지 데리고 있던 상황입니다. 그래서 성종은 김치양을 장형(곤장 때리는 것)으로 다스려 먼 곳으로 유배 보냈다고 고려사 열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 고려 천추태후와 함께 경종에게 시집온 천추태후 여동생 헌정왕후 역시 바람을 핍니다. 바람난 대상은 고려 천추태후의 숙부 왕욱입니다. 이 사실 역시 성종이 알게 되는데요. 그래서 성종은 숙부 왕욱을 먼 곳으로 유배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때 이미 헌정왕후는 왕욱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왕욱이 유배를 갈 때 헌정왕후는 아기를 낳고 세상을 떠납니다. 헌정왕후와 왕욱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후에 고려 8대왕 현종이 됩니다.

 

997년 고려 성종은 승하하고 다음왕은 고려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이 고려 7대왕이 됩니다. 목종은 당시 18살이었는데요 고려 천추태후는 섭정을 통해 정치에 관여합니다. 그러면서 천추태후는 귀향 갔던 김치양을 다시 불러들여 그에게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며 둘이서 고려라는 나라의 권력을 휘어잡게 됩니다.

 

그렇게 고려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고려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고려 천추태후의 아들 목종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종은 아들을 낳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천추태후는 나이 40살 정도에 김치양과 관계를 하여 아이를 낳습니다. 당시 목종 다음으로 왕이 될 수 있는 왕족은 바로 고려 천추태후의 둘째 아들과 천추태후의 동생 헌정왕후의 아들 2명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추태후는 자신의 조카인 헌정왕후의 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위의 그림은 구글어스로 본 진관사입니다.

당시 헌정왕후의 아들인 대량원군은 고려 천추태후가 강제로 출가시켜 스님으로 절에 있었는데요. 어느 날 궁궐에서 대량원군을 주라고 떡과 술을 절에 보냈다고 합니다. 이상함을 느낀 진관스님이 대량원군을 숨기고 궁궐에서 준 떡과 술을 버리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먹고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대량원군은 후에 고려 8대왕 현종이 되는데요. 그 때 진관스님이 너무 고마워 절을 지어주었는데 그것이 서울시 은평구 진광외동에 있는 진관사입니다.

 

1009년 고려 개경 궁궐에서 화련한 연등행사가 이뤄졌는데요. 그 때 천추전에서 큰 화재가 일어납니다. 목종이 그것을 보고 놀라 자리에 눕게 됩니다. 이 때 왕이 승하할 수도 있으니까 고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계략을 세웁니다. 목종의 충신 중에 강조라는 분이 계셨는데 강조는 당시 고려의 최정예 군을 지휘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거짓으로 불러 죽이려고 하는데요. 때마침 강조가 아버지에게도 편지를 받습니다. 왕은 이미 죽고 간흉이 권세를 휘두르니 개경으로 군사를 이끌고 와 국난을 바로잡으라는 메시지였는데요 강조는 그래서 거병을 하여 개경에 쳐들어가려고 계속 진군해 왔습니다. 그렇게 평주까지 왔는데 목종이 아직 안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강조는 이미 거병은 하였고 오다 보니 목종은 살아 있는 것을 안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그냥 개경에 쳐들어가서 목종을 폐위시킵니다.

 


이 사건은 고려 최초로 신하가 왕을 추출한 사건이고요 당시 고려 왕실의 권위가 있어서 강조가 목종을 축출하고 고려 권력자 1위가 된 것은 맞지만 자신이 왕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대량원군을 데리고 와 고려 8대왕 현종을 시킵니다. 그래서 고려 천추태후와 목종을 유배시키다가 중간에 목종은 안전을 위해 죽입니다. 고려 천추태후와 김치양 사이에 난 아들도 죽입니다.

 

그렇게 고려 천추태후에 대한 기록은 없다 21년 만에 1029년에 고려 천추태후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고려 개경 숭덕 궁에서 66세 나이로 죽은 것입니다. 그 후 묘도 성대한 능으로 만들어집니다.

 

과부가 바람난 상황 때문에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많은 비판을 받은 고려 천추태후인데요 조선시대의 그런 비판들도 천추태후가 바람난 것에 한정할 뿐이지 고려 천추태후가 직접 정치를 하며 잘못했다는 비판은 없어 정치를 못하진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상 고려 천추태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정말 파란만장하게 사신 분입니다. 너무 욕심이 심해 화를 당하셨는데요. 정치를 못하신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으니 전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외롭고 솔로이면 딴 남자 만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박근혜 때문에 여성 대통령은 당분간 힘들 것이라고 보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박근혜는 개인이 이상한거지 여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뛰어나신 여성 지도자들도 많이 나올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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