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공진 장군에 대해 알아봅시다

하공진 장군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하공진 장군은 1010년 고려에 거란의 40만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 외교로 거란 군을 돌려보내신 분입니다. 하공진 장군은 공에 비하여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10세기 초에 고려와 거란 사이는 국지전은 계속 있었고 대규모로 거란 군이 쳐들어온 것은 3번 있었습니다. 거란군의 1차 침입때 거란 군을 외교로 돌려보낸 분이 유명한 서희장군님이고요 강동 6주도 그때 받은 것입니다. 거란군의 2차 침입때 역시 외교로 거란 군을 돌려보낸 분이 바로 하공진 장군님이십니다.

 


위의 그림은 거란 군이 대규모로 3번 쳐들어왔을 때 루트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하공진 장군님이 활약한 2차 침입때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까지 쳐들어와 당시 고려왕이었던 현종은 2번째 지도의 루트를 따라 전라남도 나주까지 피난을 갔습니다.

 


1009년 고려 장수 강조가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이를 이유로 거란의 성종은 고려를 쳐들어 온 것입니다. 신하로써 왕을 폐위한 강조의 죄를 묻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 1차 침입때 고려는 거란에게 송과 외교를 단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고려는 송과 몰래 계속 외교관계를 맺고 여진과도 외교를 맺은 것도 이유입니다.

 

당시 고려는 강조가 이끄는 군대가 제일 강했는데요. 이런 강조 군대마저 거란 군에 패배하고 강조는 사로잡혀 죽게 됩니다. 그래서 거란의 다음 목표는 강조가 옹립한 고려 현종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고려 조정은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강감찬 장군이 개성에서는 고려 현종을 지킬 수 없으니 왕의 피난을 제안합니다. 당시 많은 신하들은 강조도 진 마당에 그냥 항복하자고 했는데요. 현종은 강감찬 장군의 말을 듣고 그날 밤으로 전라남도 나주를 향해 피난을 가게 됩니다.

 

고려사 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강감찬 장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체구가 작은데다 얼굴이 못생겼으며, 의복은 더럽고 낡아서 보통 사람보다 낫지 않았다.” 보통 영웅에 대한 기록은 좋게 써주는 편인데 못생겼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저 의미는 강감찬 장군이 못생겼다는 것을 가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같은 공으로 거란 군을 결국 대패시키고 고려와 거란의 대규모 전쟁은 끝나 고려는 평화를 갖게 됩니다. 못생긴 분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강감찬 장군은 거란 군이 전면전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강조와 고려 현종을 제거하고 거란과 사대를 하며 송이나 여진과 외교를 끊을 것을 바란다고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협상의 여지는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요. 협상을 하기 위해 하공진 장군을 거란 본부로 보냅니다.

 


위의 그림은 하공진 장군 그림과 하공진 장군 사적비(진주성)입니다.

하공진 장군은 거란본부로 가 거란 성종에게 군사를 되돌리면 고려 현종이 직접 사죄를 하러 올 것이라 얘기 합니다 그래서 거란 성종이 고려 현종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 하공진 장군은 강남으로 피난 갔다고 합니다. 거란 성종이 다시 강남이 어디냐고 묻자 하공진 장군은 너무 멀어서 몇 만 리가 되는지 헤아릴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간 후 거란은 개성에서 추격을 그만두고 군사를 돌려서 되돌아가게 됩니다.

 

위의 내용만 봤을 땐 너무 시시하게 돌아가서 웃긴 내용인데요. 거란이 돌아간 이유에서 위의 내용은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고 실제적인 이유들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고려군 퇴각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하공진 장군은 인질로 데려갑니다.

1. 오고간 대화중 고려왕이 직접 거란 왕을 알현하러 올 것이라고 말한 사항이 중요한 사항입니다. 거란은 그렇게 고려왕이 직접 온다는 사실을 전쟁의 성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2. 거란 군이 개경까지 일직선으로 쳐들어오는 바람에 아직 거란군 후방에는 고려 성들이 많이 남아 후방이 불안한 상태입니다.

3. 유목민이 농경민을 처들어갈때는 보통 음력 7월에 쳐들어가서 다음해 음력 1월에는 돌아가는 패턴이 있습니다. 자기네들도 생활을 해야 해서 그런 패턴이 생긴 건데요 마침 음력 1월쯤이라 슬슬 돌아갈 생각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거란군은 퇴각을 하는데요. 퇴각하는 거란군의 뒤통수를 고려군이 제대로 칩니다. 퇴각하는 거란 군을 고려군이 공격해 수천 명을 죽이고 끌려가던 고려 백성들 3천여 명도 구출합니다. 군마나 무기 등을 엄청나게 빼앗습니다.

 

거란 성종은 끌려간 하공진에게 아내를 주는 등 굉장히 잘해줍니다. 우리 편 하자는 제스처인데요 하공진 장군은 순종적으로 대하면서 말을 중요 길목에 배치하는 등 고려로 도망갈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합니다. 그렇게 탈출을 준비하다 발각돼 하공진 장군은 거란 성종에게 끌려갑니다. 그래도 거란 성종은 하공진 장군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데요. 하공진 장군이 자기 본심을 가리지 않고 거란 성종을 막대하자 거란 성종은 화가 나서 하공진 장군을 죽이고 그 심장과 간을 씹어 먹었다고 합니다. 하공진 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고려사 열전에 나옵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하나 살아서 대국(거란)을 섬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상 하공진 장군과 거란의 2차 침입에 대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하공진 장군님 정말 좋으신 분 같은데 그렇게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공진 장군님 같은 사람이 많은 나라가 돼야겠지요. 하공진 장군님 존경합니다. 보잘 것 없지만 이 포스팅은 원래 다른 역사를 이야기하려다 하공진 장군님을 위해 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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