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 에 대해 알아봅시다

안중근 의거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도마 안중근 의사는 19091026일 오전 930분경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주인공 일본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하여 죽입니다. 안중근 의거 지점은 지금도 하얼빈 역에 가면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안중근 의사 사진()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거 관련 주요 위치가 표시된 사진(아래)입니다.

도마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에 성공한 후 도망가지 않고 순순히 잡힙니다. 그 이유는 당시 일본의 조선침략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 역에 간 이유는 만주를 놓고 일본과 러시아가 경쟁관계인지라 러시아와 협상하기 위해 간 것입니다.

 

당시 하얼빈은 중국 영토지만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러시아 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중근 의거 때 러시아는 검문을 강화하려고 했는데요. 일본이 일본인은 자유롭게 다녀야 한다며 엄격한 검문을 반대하였습니다. 덕분에 안중근 의사는 별 검문 없이 이토 히로부미 한테 갈 수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거 는 안중근 의사 독단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과정에서 한국인 통역사들이나 지인의 도움을 받긴 했는데요. 실질적인 작전 계획과 실행은 안중근 의사 단독으로 하였습니다.

 

당시 안중근 의거 는 그 파급력이 워낙 강해, 일본은 안중근 의사 개인의 일로 이루어지것이라고 퍼트리기 위해 안중근의사에게 개인적인 원한으로 사살한 것이라고 하면 사형은 면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요. 안중근 의사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안중근 의거 사살관련해서 매천야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소식이 하루도 안 돼 동서양에 전해졌다. 서울에서는 드러내 놓고 통쾌하다고 하거나 안 의사를 칭송하지는 못했지만. 깊은 밤에 앉아서 술을 따르며 경하했다.”

 

안중근 의거 관련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습니다. 일본외교사문건 불령 사건 보고 경신 여학교 졸업생 홍은희는 안중근 사진을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


 

당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 같은 안중근 의거로만 일본에 저항한 것이 아닙니다. 사상적으로도 정리를 했는데요. ‘동양평화론이라는 책을 옥중에서 저술하면서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해결책을 내려고 했습니다. 동양평화론의 기본 내용은 일본이 동양의 평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동양의 평화를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제는 그것을 반성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나아가 달라라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동양평화론은 저술 중에 안중근 의사가 사형되어 완성되지는 못했습니다.

 

안중근 의거 이후 안중근 어머니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니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니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니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어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위의 편지는 실제로 받은 것은 아니고 면회 온 동생 편에 들은 얘기라고 합니다.

 

도마 안중근의 도마 는 세례명 토마스에서 나온 호입니다.

 

안중근 의거 이후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에서 계파를 초월한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상 안중근 의거에 대해 안내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일본에 먹히는 바람에 우리는 뛰어난 인재들을 너무 안타깝게 많이 잃었습니다. 이제 언제나 조심하여 다시는 한일합방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