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개과정 중 초기 단계를 알아봅시다

임진왜란 전개과정 중 초기 단계를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592년 4월 13일 부산 앞바다에 일본 군인들을 실은 배들이 몰려옵니다 보고를 들은 부산진성은 이를 조공을 위해 온 배로 판단합니다. 당시 부산 첨사 정발은 절영도에서 사냥중이었는데요 일본 배가 온다는 보고를 받고 지켜봤는데 일본 배 700여 척이 새까맣게 오는 것이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정발은 부산진성으로 들어가 전투준비를 합니다.

 

일본군은 당시 1만 8천여 명 정도였고, 부산진성에는 조선군 6백여 명이 지켰습니다. 부산진성은 북문, 동문, 서문, 남문 중 북문이 제일 취약했는데요 일본도 전투를 하면서 이를 알게 되고 북문을 통해 함락됩니다. 전투는 3시간 정도 지속되다 정발도 가슴에 조총을 맞고, 병사들도 전멸 상태인 이유 등으로 패합니다. 이 때 일본군 피해는 100여 명 정도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200년 동안 평화가 지속되다 보니까 문을 중시하고 무를 천대하는 등 병력이 약했습니다. 병사수도 적고 훈련도 잘 안되었는데요. 이에 반해 일본은 전국시대를 겪으면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로 이루어진 데다 최신 무기 조총도 사용하고 있었으니 전력 차이는 상당했습니다. 또 전쟁을 시작하기 2달전부터 첩자들을 일본에서 조선으로 보내 미리 정보들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부산이 큰 도시이지만 당시 부산진성에는 민간인도 별로 없고 그냥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전진 배치한 하나의 성에 불과했습니다. 부산진성 뒤에는 동래성이 있었는데요 동래성이 사람도 많고 현재의 부산시장이 있는 정도의 성이었습니다. 동래성 부사는 송상현이란 인물이었는데요 전쟁이 난 것을 알고 주위의 성들로부터 병사들을 공급받는 등 전투준비를 합니다.

 

송상현이 동래성 부사로 부임한 것은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입니다. 송상현은 동래성 부임과 동시에 성 주변에 나무를 심어서 성 방어도를 높이고, 평화로운 시기였지만 병사들 훈련을 시켰습니다.

 

일본은 송상현에게 길을 비켜줄 것을 요구했는데요. 송상현 은 “싸우다 죽기는 쉽고, 길을 열기는 어렵다”라고 말하고 결사항전으로 싸웁니다. 송상현은 부산에 있다 보니 일본 사람들하고도 교류가 있고 친한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이런 일본인들이 이리로 가면 도망갈 수 있다고 피난길을 알려줘도 도망 안 가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이런 그의 행동들에 일본인들도 감동을 받고 성 밖에다가 송상현 무덤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 대부분의 벼슬아치들은 싸우지도 않고 도망갑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경상좌수사 이각, 경상 우수사 원균 등입니다.

 

임진왜란 전개과정 중 일본이 침략한 날은 1592년 4월 13일인데요 4월 17일이 되야 조정에 전쟁 났다고 보고가 됩니다. 전쟁보고가 4일 만에 도착한 건데요 당시 봉수대 같은 통신체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전개과정 중 하나인 선조가 당대 최고의 명장인 신립 장군을 출정시킵니다. 신립 장군은 당시 조선의 에이스 장군이었습니다. 신립 장군이 출동하는 것이 알려지자 그 지역 사람들은 피난을 안 갈 정도였습니다. 신립장군은 험준한 조령 대신 탄금대에서 싸우기로 합니다. 신립장군 특기가 기마대를 잘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평평한 땅들인 탄금대에서 싸우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 조정도 신립장군에게 정규 군사를 몰아줘 8천여 명의 군사를 가지고 싸웠습니다.

 

근데 신립장군과 일본이 싸운 시간에 비가 갑자기 내렸습니다. 비가 갑자기 내려 땅이 진흙처럼 되자 기마병들의 특기인 속도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립장군 군사들은 조총에 전멸하고 신립장군도 자결하셨습니다.

 

그 이후 임진왜란 전개과정 은 선조의 몽진으로 이어집니다.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갑니다. 선조가 임진강에서 강 건널 때 일본군이 배 못 만들게 하려고 주변 백성들 나무집을 다 태우라고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조는 명나라로 도망가려고 했는데요 명나라에서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신하들도 모두들 조선 땅을 벗어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분조를(조정을 둘로 나누는 것) 하여 광해군에게 권한을 줘 전쟁을 지휘하게 하고, 선조 자신은 명나라와 조선 경계선에 대기하면서 여차하면 명나라로 도망갈 행동을 취했습니다.

 

임진왜란 전개과정 초기 20일만에 한양이 일본군에 점령당합니다. 거의 그냥 일반 행군한 수준 시간으로 한양을 먹은 것입니다.

 

이상 임진왜란 전개과정 초기 단계를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선조는 언제나 욕을 하게 만드는 행동을 합니다. 왕이고 뭐고 그냥 살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는데요 이것이 왕권 국가의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쓰레기인듯한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투표를 잘합시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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