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이야기를 알아봅시다

훈민정음 창제 이야기를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훈민정음은 한민족에게 자랑거리인데요. 배우기 쉬운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자판기를 칠 때나 핸드폰에서 문자를 입력할 때도 굉장히 편하고 좋습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훈민정음 창제 관련 이야기들을 간단히 살펴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1433년 7월(세종 15년) 세종대왕에게 특이한 보고가 올라옵니다. 곡산에 사는 ‘약노’라는 여인이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의문을 품은 세종대왕은 사건의 재조사를 시켰고, 재조사 결과 약노라는 여인은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 후 약노라는 여인은 곧 풀려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억울함은 무지에서 발생한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종 16년에 삼강행실도 라는 책을 편찬합니다. 삼강행실도는 군신, 부자, 부부의 삼강에 거울이 될만한 열녀, 효자, 충신의 행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과 한자를 넣은 책입니다. 하지만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그림만으로 위의 지식들을 다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세종대왕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백성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가 있어야 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세종대왕은 공부를 좋아하셔서 세종대왕님 답게 문자를 만드는 일을 결정하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후 10년간의 노력 끝에 훈민정음 창제 를 하시게 됩니다.

 

세종실록 1442년 12월 30일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 저것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 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는 1443년이고, 훈민정음 반포는 1446년입니다. 현재 한글의 날은 훈민정음 반포 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아들이자 다음 왕이 문종인데요. 세종대왕은 말년에 성인병 등으로 종합병원처럼 많이 아파 문종에게 대리정치(섭정)를 많이 시킵니다. 훈민정음 창제 1년 전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문종이 대리청정을 하는데요. 이때 최만리라는 분의 상소문에는 “세자 문종이 언문에 빠져있음을 지적”합니다. 언문은 훈민정음인데요. 문종은 세종대왕 대신 정치를 하면서 훈민정음 창제 에 크게 한몫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훈민정음 창제 와 반포 당시 세종대왕은 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문종이 아무래도 세종대왕 대신 훈민정음 창제 에 관계가 많을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훈민정음 혜레본을 보면 ㄱ을 설명하는 한자로 임금 군자를 사용하고, ㄲ을 설명하는 글자로 아기 용자를 사용합니다. ㅋ을 설명할 때는 즐거울 쾡을 사용합니다. ㅇ은 일 업자를 사용합니다. 이를 모두 붙여서 해석하면 ‘왕과 왕자가 즐겁게 일을하다’로 해석됩니다. 세종대왕과 문종이 함께 훈민정음 창제 를 했다는 글을 문학 장치처럼 숨겨서 얘기하는 힌트를 주는 글입니다.

 

죽산안씨 대동보 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보내자 공주(정의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정의공주는 세종대왕 따님인데요. 세종대왕과 아들인 문종 또 세종대왕 딸인 정의공주 까지 훈민정음 창제 에 공헌을 하여 가족사업처럼 훈민정음 창제 는 진행되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후 반포까지 이른후 사대부는 훈민정음을 반대하였습니다. 사대관계인 명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까 우려해서이고, 문자를 아는것만으로도 큰 힘인데 이를 일반 백성까지 문자를 알게 하면 권력을 다 나눠가는 것이라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님은 훈민정음 창제 후 끝까지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지키셨습니다.

 

구한말 조선관련 글을 쓴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 ~ 1904)은 한국과 이웃나라들(1898)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한강 유역의 하층민들이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을마다 서당이 있고 읽고 쓰지 못하는 조선인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일반 백성들까지 문자를 아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보통 양반하면 처음에 천자문을 배우는 것으로 아시는데요. 천자문 배우기전에 외가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한글 먼저 처음으로 배운다고 합니다. 그래야 그 후에 천자문 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 훈민정음 창제 관련 이야기를 하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한민족이 자랑스러운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훈민정음 창제 이지요. 훈민정음 창제 관련해서는 국뽕을 맞아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글을 사랑하여 한민족 발전과 행복에 크게 기여하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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