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에 대해 알아봅시다

병자호란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병자호란 은 1636년 12월에 청나라 군대가 조선을 침공한 사건입니다. 청나라 군사가 12만 8천여명에 달 할 정도로 대군이 조선을 침공한 것입니다. 청나라 군사가 침공한지 5일 만에 한양이 점령당합니다. 청나라 군사들은 전방에 있는 조선 성들을 점령하지 않고, 그냥 바로 한양으로 내려와서 5일만에 한양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위의 지도는 병자호란 시 청나라 군대의 이동경로(위 지도)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 그림(아래 그림)입니다.

당시 조선왕은 인조였는데요. 인조는 원래 강화도로 피신을 가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갑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도착 한 날인 음력 12월 15일 강화도로 가려고 했는데 당시 겨울이라 춥고, 청군이 이미 가까이 있는데다가, 눈이 많이 와서 가기 힘들어 그냥 남한산성에서 농성을 합니다.

 

 

인조가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가려고 한 이유는 1627년 정묘호란 때 당시 화친에 성공했던 장소이고, 바다로 사방이 둘러싸여 수전에 약한 청나라로부터 지키기 유리해서입니다. 또 바다와 이어있다 보니 수로를 통해 군량과 무기 보급이 용이했습니다.

 

후금이 병자호란 을 일으킨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후금에서 조선에 조문사절단을 보낼 때 후금 조문사절단(인열왕후 사망 1635년 12월 9일)을 조선에서 홀대했습니다. 그때 조선 고위층들은 명나라에 무조건적인 의리를 지키느라 청나라는 오랑캐라 해서 얕잡아 봤는데요. 그런 것들이 행동으로 나타나 후금 조문사절단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후금 조문사절단을 홀대한 것이 한 가지 이유입니다.

2. 홍타이지 황제 즉위식(1636년 4월 11일)에서 조선 사신들만 절을 안하고 꽃꽂이 서 있었습니다.

3. 1619년 후금이 요동을 차지한 이후 도망쳐온 한인들을 받아들여 명에 넘긴 것.

4. 정묘년에(정묘호란) 맹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누차 그것을 어긴 것.

5. 후금으로 귀순하던 공유덕과 경중명 일행을 공격한 것.

6. 명에는 병선을 제공했으면서 병선을 빌려달라는 후금의 요구는 거부한 것.

7. 인조가 평안감사 홍명구에게 유시문을 보내 잔신들과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한 것.

 

위의 이유에서 1번, 2번을 제외한 3~7번의 이유들은 홍타이지(후금 황제)가 직접 얘기한 병자호란 원인입니다.

 

인조는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정권유지에만 더 관심 있던 왕입니다. 백성들은 굶주림이나 여러 고난으로 고통을 격고 있을 때 이는 외면하고, 인조 자신의 아버지를 왕으로 올리는 추숭에 10년동안 몰두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민생에 있어서 반성은 하지만 개선은 하지 않은 왕이라고 조선왕조 실록에 사관이 기록할 정도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인조실록 1635년 7월 29일 “인조는 요순(堯舜)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병자호란 시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혔을 때 경상도나 전라도 등지에서 군사들이 도우려고 오는데요. 모두 청나라 군대에 격파당합니다. 47일동안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텼는데요. 식량도 다 떨어지고, 강화도가 함락되어 거기 있던 세자 등 왕족이나 고위층들도 대거 후금에 잡혔다는 소식도 접합니다. 또 남한산성에서 개구멍 등으로 몰래 나가 사냥해서 먹을 것을 보급하려고 했는데 그런 것도 다 안되고요. 모든 것이 버틸 수 없어 인조는 항복문서를 후금 진영에 보내고 항복을 합니다.

 

당시 병자호란 후금 군대에는 황제인 홍타이지가 직접 와 있었습니다. 홍타이지는 조선 왕인 인조가 직접 홍타이지 한테 와서 항복 의식을 갖추라고 요구를 합니다.

 

거기서 삼배구고두례라고 해서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황제를 알현할 때 행하는 예식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드라마에서 보면 인조가 이마로 땅바닥을 부딪혀 이마에 피가 맺히는 장면을 생각하시는데요. 실제로는 기록에는 없지만 그렇게 세게 땅바닥에 이마를 찍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의 항복 의식은 인조 혼자 한 게 아니라, 인조가 하면 그 뒤로 왕족과 고위관리들이 모두 함께 하였습니다.

 

홍타이지는 병자호란 승전 기념으로 삼전도비를 세우라고 해서 서울시 송파구 지역에 삼전도비를 세웠습니다.

 

아래는 병자호란 시 청이 요구한 항복조건 11가지입니다.(정축 화약)

1. 조선은 청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행할 것.

2. 조선은 명의 연호를 버리고 명에서 받은 고명과 책인을 헌납하며 수호를 끊을 것.

3. 조선은 왕의 장자와 제2자 그리고 대신의 자녀를 인질로 보낼 것.

4. 청이 명을 정벌할 때는 기일을 어기지 않고 원군을 파견할 것.

5. 가도 공격을 위한.... 전쟁 물자를 준비할 것.

6. 청의 사신을 명의 사신 대접하던 예로 맞춰 대접할 것.

7. 포로들이 도망쳐 오면 체포하여 돌려보낼 것.

8. 내외의 여러 신하들과 혼인을 맺어 평화를 유지할 것.

9. 성곽을 증축하고 수리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10. 일본과의 무역은 허락하나, 일본의 사신을 인도하여 청에 조회하도록 할 것.

11. 황금 100냥, 백은 1,000냥을 비롯한 물품 20여 종을 세폐로 바칠 것.

 

병자호란 후 조선은 소심한 복수를 하는데요. 위에서 언급한 청의 요구를 조금씩 어기는 것입니다. 남한산성과 평양성을 복구하고요. 청 몰래 계속 명과 외교를 하였습니다.

 

병자호란 의 가장 큰 피해는 백성들이 가졌습니다. 백성들은 청나라 군사들에 잡혀 청나라로 가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50만 명에 이르는 분들이 피로인이라는 이름으로 청나라에 끌려갔습니다. 조선인을 사고파는 시장이 심양이란곳에 세워졌습니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으로는 임경업전, 박씨전, 유록전, 김영철전 등이 있습니다.

 

이상 병자호란 관련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력유지에만 힘쓰고 민생을 등한시할 때 상황이 안 좋으면 언제든지 백성들이 저렇게 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점을 보고 배워 정의롭고, 공정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투표로 뽑아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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