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 업적에 대해 알아봅시다

광개토대왕 업적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한국 사람치고 광개토대왕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우리나라 최고의 정복군주신데요

광개토대왕은 삼국시대분이라 남아 있는 자료가

별로 없어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자료들을 통해서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알아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위에 보이시는 분이 광개토대왕이라고 합니다.

지도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영토 확장

을 한 지역입니다.

광개토대왕은 동방의 알렉산더대왕이라고

하는데요. 광개토대왕이 공파한 성이 64개이고

촌이 1,400개정도 된다고 합니다.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소수림왕이 율령을

전파하는 등 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광개토대왕이 왕으로 직위 했을 때(391)는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고국원왕때 연나라 모용황이 침략해 궁을 불태우고

남녀 5만 명을 잡아갔다고 하고요 백제가 침략해

고국원왕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개토대왕의 업적인 정복지역을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요동 쑹화 강,

동북쪽으로는 시베리아

까지 영토를 넓히며 그 지역의 자원을 갖고

농경지를 넓힘으로써 해결하려 했습니다.

내치도 했고요


 

고구려와 연은 계속해서 대립을 했는데요.

전연의 장군이 왕의 어머니인 주 씨와 왕비를

추격하여 포로로 사로잡았고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무덤을 파고 시신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담덕은(=광개토대왕) 나면서부터 허우대가 컸으며

뛰어나고 활달한 뜻이 있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 중에는 한강지역 점령도

있는데요. 396년에 한강을 직접 건너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백제의 왕인 아신왕을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러나 광대토대왕은 백제를 멸하지 않고 풀어주어

살게 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보면 백제나 신라 같은 민족에게는

전쟁을 해도 악랄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왜 같은 완전히 다른 민족들은 악랄하게

대했던 것으로 나옵니다.

실제로 신라가 왜의 침략에 당하고 있을 때

광개토대왕이 5만 군사를 보내어 도와주기도 했다고

합니다.(서기 400)

 


위의 지도는 시라무렌강과 요동지방의 위치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광활한 영토를 정복한 것인데요.

거란을 정복함으로써 시라무렌강을 갖게 됩니다.

시라무렌강에서는 소금을 채취할 수 있는데요

당시 소금은 귀한 상품이어서 경제적으로 고구려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또 거란지역의 광활한 영토에서 키우는 수많은

가축들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관련 광개토대왕의 업적에 대해

이렇게 나옵니다.

거란을 정벌하고 남녀 5백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또 고구려가 빼앗겼던 백성 1만 명을 이끌고

돌아왔다.“

 

또 고구려는 후연과 요동지방을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많이 하는데요. 결국은

고구려가 요동지방을 확고히 갖게 됩니다.

요동지방은 넒은 농토로 사용될 수 있어

산업적으로 중요한 땅인데요. 이런 요동지방을

확보하는 것도 광개토대왕의 업적입니다.

 


위의 지도는 당시 세력지도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입니다.

당시 407년에 후연이 무너지고 북연이 등장

하는데요.

북연을 세운 사람이 고운이라는 고구려계 출신

입니다. 그것을 안 고구려는 북연과 친밀해지려는

외교술을 펼칩니다.

북연왕도 고구려와 친밀해지려는 정책을

유지합니다.

고구려는 북연과 친밀해지면서 중국의

북위라는 세력과 직접 부딪히지 않아도 되는

완충 역할을 북연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북연도 서쪽의 북위와 대립하기 때문에 뒤가 안정될

필요가 있어 고구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

합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요동정벌도 있는데요.

요동정벌을 통해 농사할 땅을 많이 얻은 것도

득이지만 요동에 있는 철광석 산지를 갖은것도

큰 이득입니다.

당시 철광석은 지금의 석유와 거의 동급인데요.

무기나 농기구등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철의

생산지를 얻는 것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높이가 6.38m이고 너비는

2m입니다.

고대사의 중요한 정보들에 대해 4면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광개토대왕을 국강상광개토경평안

호태왕이라고 기록했는데요.

국강상 = 왕의 무덤 위치

광개토경 = 땅을 널리 개척하다.

평안 = 나라를 평안하게 하다.

호태왕 = 훌륭한 왕을 기리는 극존칭

이라고 합니다.

 

또 광개토대왕릉비에는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정리하면서

서녕기업(=백성들이 평안히 생업에 힘쓰고),

국부민은(=나라가 부강하여 백성들이 풍족해지고)

오곡풍숙(오곡이 풍성히 익었다.)

라고 칭송했다고 합니다.

영토만 그냥 넓힌 게 아니라 백성들이 잘 살수

있도록 내치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애민(愛民) 철학이 광개토대왕에게 있었다는 말인데요.

광개토대왕이 사용했던 연호는 영락(永樂)입니다.

영원히 즐겁게 해라, 영원히 백성들을 즐겁게 하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상 광개토대왕의 업적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냥 영토를 많이 넓힌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애민정신까지 가지고 계속 광개토대왕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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