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남북 공동성명 배경에 대해 알아봅시다

7.4 남북 공동성명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72년 7월 4일 같은 날 같은 시각 서울과 평양에서 똑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합니다. 통일과 관련된 성명서였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후 최초로 하는 통일 성명서입니다.

 

당시는 한국이나 북한이나 서로를 적대적 관계로 바라봤습니다. 그래서 통일이란 내용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도 있는 일이고, 간첩죄가 씌워질 수 있는 민감한 문제였는데요. 이런 이유로 7.4 남북 공동성명을 하기 전까지 탑 시크릿 모드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7.4 남북 공동성명의 핵심은 아래입니다.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 대단결의 원칙으로 통일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이 성명으로 남북 직통 전화가 개통되었고요. 군사 도발이 감소했고요. 남북의 실세를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북한을 북괴라고 불렀는데요. 저 때부터 북한이라 부르기 시작했고요. 언론에서 김일성에 대한 비방 같은 것을 잘 안 하게 되었습니다.

 

7.4 남북 공동성명 전까지만 해도 김신조 사건에, 무장공비침투사건도 있는 등 남북은 험악한 관계였습니다. 이런 것이 대화모드로 순식간에 바뀐 이유는 국제정세가 변해서입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때입니다. 국내 여론도 안 좋았고,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크니까 베트남 전쟁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닉슨 미국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합니다.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가 책임진다.” 1969.7.25.

 

 

또 다른 국제정세의 변화는 스탈린이 죽은 후 소련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자기네에게 뒷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미국에 손을 뻗치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소련이 갈라지면서 틈새가 보이니까 그걸 파고든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아 긴장 완화(데탕트, detente) 상태가 됩니다. 물꼬를 튼 것은 탁구인데요. 핑퐁외교라고도 하지요. 탁구로 서로 친선 관계를 만들면서 정치적으로도 회담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이 친해지는데요. 이 와중에 중국이 이어져서 미국과 북한이 소통을 하게 됩니다. 북한이 미국에 원하는 것 목록을 중국에 주면 중국이 그대로 미국에게 말하는 방식 등으로 북한도 같이 어울리는 뉘앙스가 나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한국에서는 혼자 외톨이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미국+중국+북한이 하나로 가려고 하는데 한국만 따로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위기감을 느껴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고 협상해서 만들어진 게 7.4 남북 공동성명입니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봐야 끝까지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면 끝까지 같이 가지 못하는데요. 남과 북이 그 당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봤습니다. 남한은 위에서 말한 대로 코리아 패싱을 안 당하면서 박정희 정권이 공고해지는 것을 원했고요. 북한도 남북통일보단 남조선혁명 기반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헌법도 발표했습니다. 박정희의 유신헌법과 김일성의 사회주의 헌법은 같은 날 발표했습니다. 두 지도자가 통일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는데 몰두했던 것입니다.

 

이상 7.4 남북 공동성명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아쉽네요. 이런 것을 참고하여 다음 기회에는 통일이란 목표를 꼭 이루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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