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도대전 요약해 드리는 글을 포스팅하겠습니다. 관도대전은 삼국지의 3대 대전 중 하나인 전투입니다. 삼국지 3대 전투는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입니다. 전쟁 일어난 순서도 제가 적은 글 순서대로입니다. 삼국지는 중국의 진나라 학자 진수가 편찬한 위·촉·오 삼국의 역사서인데요. 정사입니다. 삼국지연의는 1천 년 동안 정사인 삼국지에 사람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소설입니다. 명나라 때 나관중이 집필했는데요. 우리가 흔히 읽는 삼국지가 바로 삼국지연의입니다. 여기서는 삼국지연의가 아니라 삼국지 정사 기준으로 글을 적겠습니다.
위의 그림이 관도대전 상황인 지도 모습입니다.
후한말은 중국이 공간적으로 확장되며 다민족 다문화의 국가로 거듭나던 시기입니다.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데도 삼국지는 중요한 단서를 줄 수 있습니다.
중국 후한 말 영제 때(168~189년) 권력을 잡고 조정을 휘두른 10여 명의 환관을 십상시라고 하는데요. 당시 한나라는 어린 황제를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던 보정 대신 하진이 있었습니다.
하진은 권력을 남용하는 환관들을 제거할 것을 결심하는데요. 환관을 제거하기 위해 원소와 동탁을 부릅니다.
근데 하진의 계획을 환관들이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환관들이 하진을 죽입니다. 여기에 대응해 원소는 환관들 2,000여 명을 죽입니다.
목숨을 건진 환관들은 어린 황제와 그 동생을 데리고 도망쳤는데요. 궁지에 몰립니다. 그래서 자X하고요. 남겨진 어린 황제와 동생은 낙양으로 향하다가 북망산에서 동탁을 만납니다.
어린 황제와 동생을 데리고 환궁한 동탁은 임의로 황제를 폐위하고 그 동생을 새 황제로 옹립합니다. 그리고 동탁은 스스로 보정 대신에 올라 권력을 잡습니다.
삼국지 정사에서도 동탁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삼국지 정사의 저자 진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동탁은 거칠고 포악하며 사악한 데다 잔인하다. 역사를 기록한 이래 이와 같은 자는 없었다.”
권력을 잡은 동탁이 폭정을 일삼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자, 각 지역의 영웅호걸들이 동탁에게 맞서 일어납니다. 그때 일어난 영웅호걸들의 명단은 아래입니다.
“남양 태수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 하내군 태수 왕궁, 동군태수 교모, 산양태수 원유, 제북상 포신, 기향후 발해태수 원소, 전군교위 조조”
당시에 유비, 관우, 장비는 공손찬 밑에 있었습니다.
원소를 중심으로 반동탁 세력들이 일어나는데요. 당시 이 인물들이 명성을 얻기는 했습니다. 근데 막상 동탁하고 직접 싸우려고 들지는 않았습니다. 동탁이 너무 강한데 자기가 총알받이가 될 수 없었거든요.
이때 적극적으로 전투에 나선 인물이 조조입니다.
조조는 당시 환관 조등의 양자였던 조숭의 친아들입니다. 한마디로 환관의 손자입니다. 174년 조조는 20살 무렵에 낙양의 북부위 라는 관직(지금의 파출소장 정도)을 하는데요. 치안을 맡는 직위입니다. 당시 낙양의 치안은 안 좋았는데요. 부임하자마자 낙양 4대문 성문을 정비하고 야간통행금지령 등을 내립니다. 그리고 성문에 남보란 듯이 5가지 색깔로 몽둥이 10여 개를 만들어 걸어놓습니다. 마침 당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던 환관의 숙부가 야간통행금지를 위반합니다. 결론은 조조가 걸어놓았던 몽둥이로 때려죽입니다. 이 정도로 원칙주의적으로 확고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엄격한 정치를 맹정이라고 불렀는데요. 맹정의 구현자로서 조조가 떠올랐습니다.
동탁은 여포와 사랑을 나누던 초선이라는 여자를 뺏어 자기 첩으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여포에게 살해되었다고 삼국지연의에 나오는데요. 삼국지 정사에는 초선이라는 여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아래는 삼국지 위서 무제기에 나오는 정사 글입니다.
“사도 왕윤이 여포와 공모하여 동탁을 살해했다. -초평 3년(192년) 여름 4월-
동탁이 죽자, 반동탁 연합군은 서로 싸우기 시작하는데요.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삼국지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위의 지도가 당시 중국 지도인데요. 초록색 선이 2개 있는 게 보이실 것입니다. 위의 초록색 선이 황하강이고요. 밑에 초록색 선이 양쯔강(장강)입니다. 저 당시에는 중국이 황하강 유역 기준으로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저 당시 조조의 근거지는 연주입니다. 그 옆 청주에 황건적의 잔당들 있었는데요. 황건적들을 조조가 흡수합니다. 그래서 군사적으로 막강해졌습니다.
서주에는 여포가 있었고요. 형주는 적벽대전이 일어난 장소이고요. 유비가 확보한 지역입니다. 양주는 손견, 손권이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기주는 원소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저 당시에는 위의 빨간색 지역만이 중국이었습니다.
황하 북쪽에 있는 원소 VS 황하 남쪽에 있는 조조가 싸운 전투가 바로 관도대전입니다. 위의 지도에서 파란색 원이 바로 관도라는 지역인데 저곳에서 관도대전이 일어납니다.
관도대전은 삼국지 3대 대전(관도, 적벽, 이릉) 중 분량이 가장 많습니다. 그만큼 삼국지 정사 저자 진수가 이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도대전은 황하 북쪽을 차지한 원소와, 황하 남쪽을 차지한 조조가 대치한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관도대전에서 이긴 사람이 북중국(황하 지역 중국)을 다 갖습니다.
정사 기록에는 원소 병력이 11만이었고, 조조는 1만 병력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조조는 황건적을 흡수했는데요. 그래서 병력이 3~4만 정도이지 않았겠느냐고 보고 있습니다.
조조가 관도대전 초기에는 빠른 스피드로 공격합니다. 원소 군대에서 조조 이야기하면 이미 조조 군이 와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로 선전했는데요. 그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성에 들어가 공성전을 합니다.
당시 어느 정도로 조조 군이 밀렸냐면 조조 밑에 군인들이 전쟁에서 조조 군이 지면 나 좀 살려달라고 원소 군 측에 밀서를 보낼 정도로 초기엔 조조 군이 밀렸습니다.
조조 군은 성에 들어가 10개월간 버티는데요. 오랫동안 성에 갇히다 보니 먹을 것이 부족해졌습니다. 이때 원소의 핵심 참모 허유가 조조에게 투항해 옵니다.
허유가 투항한 이유는 원소가 자신의 계책을 무시했고요. 허유 가족의 비리가 탄로나 가족들이 체포되었습니다. 또 허유 자신의 욕심으로 조조에게 투항했던 것입니다.
허유는 원소의 군량을 비축해 둔 오소를 공격할 것을 제안하고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공격에 성공합니다. 그래서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승기를 잡습니다.
당시 허유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이때 조조 밑에 있던 순유와 가후가 조조에게 저 의견을 받아들이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건안 5년(200년) 겨울 10월-
결국 관도대전은 조조의 승리로 끝나고, 전쟁 후유증을 앓은 원소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조조는 관도대전에 승리하며 황하강 지역들을 다 차지하고요. 명사가 많이 모여있던 기후 지역을 얻으면서 많은 인재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이상 관도대전 요약해 드리는 글을 적었습니다. 전 삼국지 연의를 고등학교 때 1번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 삼국지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도전해 보기 힘든 책인데요. 만화로도 있다고 하니 만화로 된 삼국지는 1번 정도 읽어봐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PC 게임 삼국지 하시는 분들도 만화로라도 삼국지 책 읽으면 게임이 더 재밌어질 것입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