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의 정책 아내 29명

태조 왕건의 정책 중에서도 아내 29명을 둔 이야기에 대해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태조 왕건은 후삼국이라는 분열된 곳에서 고려라는 통일 국가를 만들기 위한 정책으로 아내 29명을 두는 진귀한 기록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여자가 좋아서 아내를 29명을 둔 것이 아니라 지방 호족 세력들이 즐비 하는 분열된 지역에서 중앙집권국가로 만들기 위해 태조 왕건은 정책적으로 아내 29명을 두었습니다.

 


위에 보이시는 첫 번째 그림이 태조 왕건의 정책인 아내 29명의 출신 지역을 알려주는 지도입니다.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하는 게 보이실 것입니다. 후삼국 시대는 단순히 후백제, 고려, 신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방에는 그 지역에 세력을 두고 있는 호족들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후백제나 고려는 그런 호족들 중에서 가장 세력이 큰 집단 이었던 것이고요 이 상황에서 태조 왕건이 나라를 하나로 묶기 위해 각 지방의 유력 호족들과 결혼 하는 방식으로 동맹이 맺어져 싸움 없이도 편안하게 나라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당시 고려는 11처제) 호족 입장에서도 왕과 사돈관계가 되니 든든해져 상생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름에서 성도 왕족들만 사용 했는데요 지방 호족들에게 왕이라는 성을 나누어 주어 같은 성을 사용함으로써 지방 호족과 우호관계를 맺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은 태조 왕건의 가계도인데요. 첫 번째 아내인 신혜왕후 유 씨는 나중에 태조 왕건과 합장하게 되는 조강지처입니다. 궁예의 폭정으로 반란을 일으키자고 태조 왕건이 주변과 얘기하고 있을 때 태조 왕건은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요. 이때 태조 왕건을 독려 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신분이 신혜왕후 유 씨입니다. 그러나 신혜왕후 유 씨에게서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29명이나 되는 태조 왕건은 잘못하면 후계자 문제 때문에 피바람이 불수도 있는 상황인데요. 이때 2번째 부인인 장화왕후 유 씨가 무라는 아들을 낳아줘 후에 2대왕 혜종이 됩니다.

 

2번째 아내인 장화왕후 유 씨는 다른 태조왕건의 정책으로 맺은 아내 29명중에서도 가문이 제일 약한 분이었는데요 그런 이유로 태조 왕건은 장화왕후 유 씨와 관계를 맺을 때 안에다가 사정을 안 하고 밖에 돗자리에 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을 장화왕후 유 씨가 손으로 찍어서 안에다가 다시 넣어 임신한 게 2대왕 혜종이라고 합니다.(고려사 기술)
왕건이 길을 가다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여인에게 물을 달래자 바가지에 물과 나뭇잎도 같이 넣어줬다는 여인이 바로 2번째 부인 장화왕후 유 씨입니다.

 


위의 그림은 고려시대 무역 품목과 고려청자입니다.

태조 왕건의 정책은 훈요 10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요. 아내가 많고 자식도 많다보니까 후계자 문제를 신경 써야 했던 태조 왕건은 훈요10조의 3번째 항에 후계자 문제를 다음과 같이 태조 왕건의 정책으로 정했습니다. “3. 왕위계승 적자적손(장남)을 원칙으로 하되 장자가 불초할 때는 인망 있는 자가 대통을 이을 것.”

 

태조 왕건은 무를 태자(정윤)로 정하면서 아내가 너무 많아 후계구도 싸움이 날까 걱정하여 자신과 전쟁터에서 동고동락을 하던 박술희를 후견인으로 세우고 빵빵한 가문의 호족들과 일찍 결혼을 시킴으로써 다음 왕이 될 무를 지키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상 태조 왕건의 정책 아내 29명에 대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태조 왕건의 정책으로 아내가 되신 분이라도 전부 순탄하게 사신 것은 아니고요 그중에는 비구니가 되신 분들도 계시다고 합니다.

 

태조 왕건님 외세의 힘을 안 끼고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 다시 하나로 통일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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