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3대 대첩 에 대해 알아봅시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김시민 장군의 진주 대첩, 권율 장군의 행주 대첩입니다. 임진왜란 초기 왜에 계속 패한 조선군이었는데요 당시 이순신 장군이 수군으로 왜를 격파하기 시작해 결국 정말 크게 왜를 격파한 사건이 한산도 대첩입니다. 한산도 대첩을 통해 왜는 수로를 이용한 보급로가 막히고 왜의 수군을 이용한 전투 의욕이 상실되었습니다. 김시민 장군의 진주 대첩은 육지전에서 크게 이긴 전투로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지킨 전투입니다. 권율 장군의 행주 대첩은 행주산성을 지킨 전투로 왜군의 한양 점령을 포기하게 한 전투입니다.

 

 

위의 사진이 황자총통이란 건데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던 대포로 보시면 되십니다. 포 앞쪽에 긴 쇠가 날라가서 적 전함들을 부수는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1.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이순신 장군은 1차 출전으로 옥포해전 등에서 3차례 승리하고, 2차 출전에서 사천해전 등에서 4차례 모두 승리합니다. 그럼으로써 왜의 서해를 통한 보급로를 막습니다.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수군 최고의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이순신 장군을 죽이라는 특명을 내립니다. 73척의 최정예 함대를 거느린 와키자카는 통영과 거제 사이에 좁은 바다인 견내량을 가득 매운 채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견내량은 폭이 매우 좁아 그곳에서의 전투는 조선 수군에게 불리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5~6척의 군선을 적진에게 보냅니다. 일본 함대를 유인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 였습니다. 조선 수군을 발견한 일본군은 조총으로 공격해왔습니다. 조선 수군은 싸우다 거짓으로 패한 척하며 주력 함대가 있는 넓은 바다로 일본 수군을 데려갑니다. 일본 함대는 퇴각하는 조선 수군을 따라가며 한산도까지 나왔습니다.

 

넓은 바다에 이르자 퇴각하던 조선 수군들은 방향을 급하게 돌려 거기에서 머물고 있던 조선 본군 함대들과 함께 학익진으로 일본 수군을 포위합니다. 그리고 조선 수군은 왜군 함대를 향해 총통을 쏘아댔습니다. 거북선은 적선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왜선들의 진영을 흩트려놨습니다. 일본 적선들은 순식간에 부셔졌습니다. 일본 함대 59척이 격침당하고, 수천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조선 수군은 1척의 손실도 없었습니다. 한산도 대첩 이후 일본은 조선 수군과의 전투를 포기합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2. 진주 대첩

1592년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를 합니다. 일본은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점령함으로써 식량 보급도 하고, 조선 수군도 육지전을 통해 물리칠 생각이었습니다. 그 길목에 진주성이 있었는데요 지리적으로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진주성을 반드시 거쳐야 했습니다. 일본군은 3만여 명이 공격하고 조선 군은 3천8백여 명이었습니다. 그 3천8백여 명도 다 군인이 아니라 의병이나, 항전하는 백성들까지 합한 숫자입니다.

 

 

진주 목사 김시민의 지휘 아래 민관군이 합심하여 항전을 하였습니다. 진주성 바깥의 일본군 외곽에서는 홍의 장군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이끌며 일본군 외곽을 교란하는 게릴라전도 하였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횃불을 들고, 호각을 불며 대규모 군대가 온 듯 꾸미며 전투를 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결전 마지막 날 김시민 장군은 조총에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진주성 민관군은 합심하여 진주성을 지켜냅니다. 개전이래 육지에서 거둔 본격적인 최초의 승리이자, 최대의 승리였습니다.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 전사자는 1만여 명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일본군은 전사자가 너무 많아서 숨기기 위해 시체들을 그냥 다 태우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김시민 장군은 진주성 지키는 인원이 너무 없으니까 허수아비를 군인처럼 만들어 진짜 군인처럼 위장을 하고, 여자들도 남장을 한 다음 싸우게 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3. 행주 대첩

1593년 일본군이 퇴각할 때 일본군은 벽제관에서의 승리로 사기가 높을 때였습니다. 그때 일본군 뒤쪽에 행주산성이 있었는데요 행주산성에서 일본군 뒤통수 칠 수 있으니까 일본은 행주산성을 공격하였습니다. 당시 행주 산성의 책임자는 권율 장군이었고 행주산성의 토벽 위에 목책을 만드는 등 전쟁 준비를 해둔 상황입니다. 일본군과 9차례 전투를 권율 장군은 온갖 방법으로 다 막아냅니다. 그 후 일본군이 퇴각하는데 추격해서 일본군 130명의 목을 베었고 적 장수들도 부상을 입혔습니다.

 

이상 임진왜란 3대 대첩 에 대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뭐든지 준비한자가 이길 확률이 높지요. 이순신 장군님이 해전을 미리 준비 안 했더라면 우리나라는 정말 힘들어졌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님, 김시민 장군님, 권율 장군님 그리고 이름 없이 희생하신 모든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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