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 에 임진왜란 후의 계획에 대해 알아봅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에 임진왜란 후의 계획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 승리했을 때를 가정한 계획입니다. 당시 조선이나 일본이나 서로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 일어나기 100년 정도 전에 신숙주가 편찬한 일본 관련 책으로 일본을 아는 게 다였습니다. 일본도 조선을 외국으로 보지 않고 쓰시마에 부속된 한 영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에 왔을 때 제일 놀란 게 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조선을 알지 못했습니다.

 

 

위의 그림은 동래부순절도라는 그림인데요. 동래성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동래성은 부산 쪽에 있으면서 임진왜란 당시 2번째로 전투가 치러진 곳입니다.

 

 

위의 그림은 동래부순절도 그림에서 깃발 있는 부분을 확대한 그림입니다. 일본 깃발에는 ‘가아도’라고 적혀 있습니다. 뜻은 우리에게 길을 빌려 달라라는 뜻입니다. 조선 측 깃발은 ‘가도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길을 비켜둘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저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명나라를 치러가는데 조선이 길을 열라는 이유로 임진왜란을 벌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것은 명목적인 이유인데요. 실제로는 조선도 지배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유는 명나라 치러가는데 조선이 길을 열라는 제스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1년 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보낸 국서가 있는데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선조수정실록, 선조 24년 “대명국(大明國)에 들어가 우리나라의 풍속을 4백여 주에 바꾸어 놓고 제도(帝都)의 정화(政化)를 억만년토록 시행하고자….”

 

일본이 명나라에 들어가서 4백여 주를 바꿔놓고 자기들 정치를 억만년 토록 시행하고자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언뜻 보면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보이는데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66개 주를 통일하고 관백(일본 천황을 대신해서 정무를 총괄하는 관직)이 된 인물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점령하고 명나라도 점령하고, 동아시아를 모두 자기들 세력권으로 만들려는 구체적인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진심으로 명만 먹고 싶다면 그냥 배 타고 산둥반도 있는 데로 가면 되거든요. 그런데 굳이 조선에 쳐들어온 것은 조선도 먹고 싶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기록상에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 관련 계획입니다.

1. 선조를 잡고 조선을 평정합니다.

2. 일본의 천왕을 데리고 북경(명나라 수도)을 평정합니다.

일본 천왕은 북경에 앉아서 조공을 받으며 천하를 경영하게 합니다.

3.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 강남인 영파(寧波)에 자신의 막부(幕府)를 건설해서 영파에서 활동합니다.

4. 그 여세를 몰아 동남아시아와 인도까지 정복합니다.

 

이런 포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기 측근의 신하들에게 밝혔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북경이 아니라 왜 영파에서 거점을 만들려고 했을까요. 위의 빨간색 원이 영파의 위치입니다.

 

 

그 이유는 영파가 바로 당시 세계 은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계는 대항해 시대라고 불릴 만큼 배를 이용한 세계 무역이 활성화되었는데요. 세계 은이 모두 영파로 모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기축통화 같은 역할을 했는데요. 이런 은 무역의 중심지인 영파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세계 무역의 노른자를 장악해 부를 쌓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 세계 은의 50%가 모두 명나라로 들어갔고 그 중 핵심이 영파였습니다. 1567년~1644년 중국 은 유입량은 1,125kg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유럽과 명나라 은 시세가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금 1덩어리 = 은 12덩어리였는데요. 명나라에서는 금 1덩어리 = 은 6덩어리였습니다. 이래서 명나라로 은이 몰린 것입니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뿐만 아니라 일본이 이런 세계적인 무역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은이 중국으로 빨려드는 현상은 대항해 시대 15 ~16세기 일어나는 현상인데요. 스페인이 남미에 가서 은광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은광에서 노동할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리고 가는데요. 유럽 + 아프리카 + 남미 이렇게 합작하여 은을 생산하여 그 은이 중국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차, 도자기, 비단 이런 것들이 유럽으로 갑니다.

 

우리가 흔히 돈을 관리하는 곳은 ‘은행’이라고 하는데요. 거기서 은이 바로 귀금속 은 맞습니다. 저 때 은 무역이 활발하여 중국말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이런 세계 무역의 중심이 바로 중국 영파였습니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영파를 장악해 세계 무역을 독점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엄청났는데요. 그 시대에 전 세계 은 유통량의 최소 30%는 일본이 공급하고 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갖는 국제전으로서의 의미북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명나라 국제질서에 해양 세력 일본이 최초로 도전한 국제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상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임진왜란 후의 계획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저렇게 세계정세를 아는 안목이 리더에게 있어야 하는데 조선이 이 부분은 많이 아쉽지요. 지금부터라도 세계정세에 관심을 가져 인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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