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멸망의 진실을 알아봅시다

백제 멸망의 진실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역사 포스팅을 하면서 무엇인가가 멸망하는

과정을 이야기 하면 언제나 찹찹합니다.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던 우리 백제 멸망의

진실은 무엇 인이 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의자왕 초상화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한 루트입니다.

655년 고구려와 연합한 백제는 신라를 공격해

신라 북쪽의 30개 성을 획득합니다.

당시 백제왕은 의자왕이었는데요 그 외에도 계속적으로

신라를 공격하며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신라와의 전쟁에서 성과가 계속 좋게 나오자 의자왕은

고무되어 자기 서자 41명을 좌평(최고관직)으로 임명하여

귀족들을 정치에서 배제시켜 귀족들의 반발을 사고 나라는

분열되어 국력이 약화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신라는 백제에게 계속 공격을 당하고 있어

백제에 이를 갈고 있었지만 혼자 공격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과 나당연합군을 결성하여

같이 백제를 쳐들어갑니다.

 

당의 최종 목표는 고구려지만 백제가 연합 국가이니

백제 먼저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나당연합군으로 무너트리자

는 신라의 제안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 백제를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신라와 당과의 연합은 쉽게 맺어진 것은 아니고요

신라가 당에게 16년 동안 계속 요구해 겨우 얻어진 것입니다.

 


위에 표시된 곳이 덕물도 위치입니다.

6606월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13만군은 백제 서해안에

위치한 덕물도에 위치합니다. 신라 태자 김법민이 마중을

나갔습니다. 소정방과 김법민은 710일 백제 남쪽에서

만나 사비성을 공격하기로 약속합니다.

신라는 5만의 군을 이끌고 당나라군대와 합칩니다.

당시 백제 정예 병사도 5만정도 되었답니다.

당은 당에 와있던 왜인 사신들을(백제와 우호) 1년 동안

가둬놓고 전쟁이 끝난 후에 보낼 정도로 기밀성에 신경을

썼습니다.

 


위에 표시된 곳이 기벌포입니다.

당나라군은 덕물도에서 백제 기벌포로 가 상륙을 하고

신라는 육로로 탄현과 황산벌을 지나 710일에 당과 합쳐

사비성을 공격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기벌포는 점령하면 사비까지 강을 타고 바로 갈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나당연합군은 차례차례 백제를 점령하기 보다는

왕이 있는 사비성을 공격해 한 번에 끝내려고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당시 백제 의자왕의 전략은

1. 왕도 수비 강화

2. 병력을 둘로 나눠 기벌포와 탄현에 보내어

막게 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잘했지만 워낙 병력 차이가 많이나

지게 된 것입니다.

 

아래는 삼국사기 기록입니다.

좌평 성충이 죽을 때 왕에게 글을 올려 말했다.

만일 다른 나라 군사가 오거든 육로로는 탄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 언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왕은 이를 명심하지 않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충이 이미 기벌포와 탄현이 전략적 요충지임을

딱 집어 말했는데요. 의자왕이나 귀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위에 표시된 곳은 논산인데요. 황산벌의 위치는

논산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이 탄현을 지나자 다급해진 의자왕은

계백에게 군사 5천을 주어 막게 합니다.

5만대 5천인데요 계백장군이 이끈 결사대는 황산벌에서 전투 4

에서 다 신라군을 이깁니다.

신라군은 사기가 떨어지고 군사들이 싸우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이때 16살짜리 신라 화랑인 관창이 혼자 백제 진영에 진격해

죽어 머리만 신라진영에 보내어집니다.

이에 자극 받은 신라군이 백제군을 공격해 이기게 됩니다.

황산벌 전투는 66079일 단 하루 동안 있었던 전투입니다.

 


위는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것으로 유명한 낙화암 사진과

나당연합군의 공격 루트입니다.

신라군을 보시면 고구려 쪽으로 쭉 가서 백제가 나당연합군은

고구려를 공격하는 것이 목표로 알게 기만하기도 했습니다.

 

사비성에서 만난 나당연합군은 백제를 공격하여 5일 만에

(660718) 백제 의자왕이 항복하여 백제는 멸망하게

됩니다.

당시 의자왕은 태자만 데리고 웅진성에 도망쳐 있었는데요.

사비성의 지휘권을 두고 의자왕 자식인 2째와 3째가 싸우다

3째 아들 부여융이 당나라에 투항을 합니다.

이에 다른 백제 민들도 당에 투항을 하고 백제는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상 백제 멸망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는

자리를 갖았습니다.

성충의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아쉽습니다.

600년 이상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백제가

황산벌 전투후 10여일만에 멸망하다니요

백제 멸망후 백제 유민들에 의해 백제를 다시 일으키려는

부흥 운동도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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