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 에 대해 알아봅시다

기묘사화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기묘사화는 1519년(중종 14) 음력 11월에 중종이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파 핵심인물들을 귀향 보내거나 죽인 사건입니다. 기묘사화 원인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폐비 신씨(중종 첫 번째 부인, 중종반정 공신들의 압력으로 이혼당함) 복위 상소 사건이 일어났는데요. 중종은 폐비 신 씨와 이혼한 후 장경왕후와 결혼합니다. 근데 장경왕후가 25살, 결혼 9년만에 아들을 낳고(=인종) 산후병으로 죽게 됩니다.

 

 

위의 초상화는 기묘사화 의 피해자 조광조 초상화입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 산후병 때문에 돌본 사람 바로 장경왕후입니다. 10년이 지난 그 시점에 장경왕후가 죽었으니, 강제로 이혼당한 첫째 부인인 단경왕후 폐비 신 씨를 다시 복위하자는 상소가 올라온 것입니다.

 

 

구언상소라고 임금의 잘잘못에 대하여 신하로부터 비판의 말을 구하던 것이 있었는데 그때 폐비 신 씨 복위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그것을 중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종은 장경왕후 아들(=인종)이 있는데 폐비 신씨가 복위하고 아들을 낳게 되면 누구를 원자로 해야 할지 모호한 문제가 있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폐비 신 씨 복위 상소는 단순히 폐비 신 씨를 복위하자는 내용을 넘어서서 폐비를 주도한 신하들도 처벌하자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 중종반정 공신들도 줄줄이 역여 벌을 받는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중종도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폐비 신 씨 복위 사건에서 스타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조광조입니다. 조광조는 벼슬살이의 시작으로 사간원 정원이라는 언론담당기관의 말단관리로 있었는데요. 조광조는 벼슬살이가 시작되자마자 신 씨 복위 사건을 올린 박상과 김정을 벌주자고 얘기했던 대사간 이하 대관들을 모두 퇴직시켜야 한다고 요구하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7급 신입 공무원이 장관들 다 교체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조광조가 이렇게 말하고 실제로 대관들이 모두 교체가 됩니다.

 

당시 중종은 중종반정 공신들에게 휘둘리며 그냥 왕 자리 나 지키기 바쁘던 상황이었는데요 조광조의 강직함에 반하게 됩니다. 중종은 조광조를 신임하고 많은 대화를 합니다. 조광조는 중종에게 조선이 어떻게 낳아가야 할 것인가 등 비전들을 제시하며 중종에게 경연을 통해 성리학을 가르칩니다. 중종은 왕 자리 나 지키기 바쁘던 왕이었는데요 조광조를 통해 통치 철학 등을 배우며 신세계를 경험합니다.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중종실록 1519년 7월 “조광조가 말하자 중종은 얼굴빛을 가다듬으며 들었고, 서로 진정으로 논설해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을 두텁게 얻고 4년 만에 판서에 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조광조 말년에는 조광조가 너무 성리학적으로 원리원칙대로만 주장을 하다 보니 중종이 염증을 느꼈습니다. 한 예로 조광조의 정치는 성리학 기준이기 때문에 신권을 강화해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종은 왕권 지향적인 왕이었습니다.

 

이때 조광조의 세력인 사림파 반대 세력인 훈구파가 계략을 꾸밉니다. 훈구파의 딸이 중종의 후궁인 것을 이용해 궁중 동산의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적어 벌레들이 글자대로 파먹게 합니다. 주초위왕은 조 씨가 왕이 된다는 말인데요 훈구파가 꾸민 것이란 것은 모르고 벌레가 글자대로 나뭇잎을 파먹은 것을 중종도 알게 됩니다.

 

중종은 조광조와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기묘사화가 중종 14(1519년) 11월에 일어납니다. 중종은 훈구파 신하들을 조광조 세력이 모르게 몰래 궁으로 부릅니다. 그래서 훈구파 세력이 조광조 세력을 진압하게 명을 하고, 훈구파는 조광조 세력을 진압합니다. 그 후 중종은 조광조를 유배 보내고 1달 후 사약을 내려 죽게 합니다. 중종이 조광조를 정치무대에 오르게 한 후 4년 만의 일입니다.

 

당시 기묘사화 에 대해 사관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중종실록 1519년 12월 “정이 부자처럼 아주 가까운 터인데... 조금도 가엽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도타이 사랑하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서 나온 일 같다”

 

조선시대 지진 기록이 2,000건 정도 있는데요 중종 때 498회 있었습니다. 당시 천재지변은 왕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요 중종은 이런 천재지변 등으로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묘사화 는 훈구파가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기묘사화 를 주도한 것은 중종입니다.

 

이상 기묘사화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중종은 상황이 안 좋아서 약한 왕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굉장히 강한 사람입니다. 업적도 많이 남겼으면 좋았을듯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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