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에 성공합니다. 이럼으로써 대한민국이 민주화가 되는 발판을 만들었는데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되기 위해 열사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인데요. 저 두 분의 열사 중 박종철 열사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대해 여기서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건물이 바로 경찰 치안본부로 사용하던 남영동 그 건물입니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남영동으로 끌려갑니다. 안기부의 남산, 군 보안사의 서빙고와 함께 경찰 치안본부의 남영동은 고문 때문에 악명이 높던 장소입니다. 남영동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회전 계단이 있습니다. 위의 모습인데요. 저 회전 계단은 ..
광화문 월대 복원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월대는 궁궐이나 건물 앞에 놓인 넓은 기단으로, 조선 시대에 왕과 백성이 소통하던 공간입니다. 그동안 광화문 월대 일부는 그 앞 도로 아래 묻혀 있었습니다. 고종의 경복궁 중건 과정을 기록한 ‘경복궁 영건일기’와 이후의 사진 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건물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진 후 터보다 한층 더 높게 돌로 쌓은 단) 과 계단석 그리고 난간석(건축물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석물)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워 만든 건축 구조물입니다. 고종 연간 월대 축조 이후 변화 과정이 있었습니다. 처음 광화문 월대 축조 당시는 남쪽에 경계가 나뉜 3개의 계단이 존재했고, 월대의 평면 형태는 역 철자형(凸 거꾸로)이었습니다..